동우가 질문했다. 동우의 질문은 이랬다.
‘이런 글들을 읽고 감명 깊은 문단을 노션에 저장하는 건가, 정 작가? 메모 독서하는 방법이 궁금해.’
‘좋은 질문이다. 글로 써서 공유할게.’ 이 글은 동우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다.
답변을 바로 하기 전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갑자기 질문이 나온 거지. 새로운 모임을 만들고 시작한 지 10일이 지나서. 처음 나온 질문이라 반가웠고 한편으론 재밌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어젯밤에 올린 글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단순히 글만 올렸다면 질문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글을 올린 뒤 바로 밑에 내가 질문을 달았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것이다. 글을 읽은 동우가 혼자 생각하다가 궁금해졌을 것이다. 질문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다.
앨버트가 투덜거렸다.
"질문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아?"
모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모르겠네. 무슨 일이 생기는데?"
침묵이 두 사람을 감쌌다.
마침내 앨버트가 몸을 곧게 펴면서 말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뭐. 궁금해했던 문제의 답을 얻겠지."
_테리 프래쳇의 소설, <<모트 Mort>>중에서
궁금증을 해소할 답변을 해야겠다. <메모 독서법>에서 신정철 작가는 모든 책을 메모 독서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난 내가 읽은 모든 책을 메모 독서한다.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리 됐는데 벌써 몇 년이 흘러서 정확히 답변은 어렵지만 대략적으로 2018년 말부터 시작했다.
읽은 모든 책은 모두 기록으로 남긴다. 최소 2줄부터, 많게는 책의 80퍼센트까지 기록한다. 손글씨로 쓸 때도 있고 디지털로 타이핑해서 저장할 때도 있다. 둘 다 할 때도 있다. 서로 장단이 있어 뭐가 더 좋다 얘기하기가 어렵다. 처음에는 손글씨만 했고 모임 관리를 시작하면서 디지털 메모를 병행했다. 지금은 손글씨 20퍼센트, 디지털 메모 80퍼센트 비율로 하고 있다.
손글씨로 할 땐 종이 노트에 쓰고 디지털로 메모 독서할 때는 에버 노트를 쓴다. 다양한 메모 앱이 있지만 에버 노트를 고집하는 이유는 사용하기 쉽고 검색이 편하기 때문이다. 노션도 써보고 다이널리스트도 써보고 구글 킵도 써봤지만 에버노트가 내게 잘 맞았다. 에버 노트 앱을 실행하고 플러스 버튼 누르고 메모하고 닫으면 끝. 그리고 필요한 때 검색하기. 다른 앱들에 비해 디자인이 좀 떨어지는 데 요즘엔 디자인도 신경 쓰는 듯 보인다.
메모 독서 방법은 이렇다. 책을 읽다가 감명 깊은 구절을 만나면 읽기를 중단하고 샤피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는다. 밑줄 그은 뒤에 다시 읽어 나가다 작은 챕터 하나가 끝나면 메모를 시작한다. 손글씨로 쓸 땐 책에 있는 문장을 있는 그대로 옮긴 뒤에 밑에다 간략히 내 생각을 쓴다. 핵심 단어와 중요한 문장에 동그라미와 별 표시를 한다. 디지털로 할 때는 중요 키워드와 핵심 문단에 글씨 색깔을 빨간색으로 변경하고 글씨 크기를 24로 늘린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다시 볼 때 눈에 빨리 띄기 때문이다. 독서 노트의 핵심은 다시 보기니까.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읽기의 말들>에 명쾌한 답이 나와 있다.
책은 눈으로 읽음과 손으로 읽음이 확실히 다르다.
정민은 “손으로 또박또박 베껴 쓰면 또박또박 내 것이 되지만 눈으로 대충대충 스쳐보는 것은 말달리며 하는 꽃구경일 뿐”이라고 절하한다. 발터 벤야민은 필사 없는 독서를 도시 위를 비행기 타고 지나가는 것에 비유하면서 “책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은 그 책을 필사하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다고 했다.
심지어 마오쩌둥은 아예 “붓을 움직이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옮겨 적는 만큼 내 문장이 됨을 나 역시 경험으로 터득했다. 지인들이 어떻게 읽은 걸 다 기억하느냐고 묻고 하는데 순전히 베껴 쓴 덕분이다.
(읽기의 말들, P247)
읽으면 그만이지 귀찮게 뭐 이런 걸 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하나둘 보석 같은 문장을 모아 보면 알게 된다. 그 문장들이 변화의 초석이 된다는 걸. 나를 방해하는 귀차니즘 너머엔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재밌어서 계속한다.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고 재미가 생겼고 이제는 말려고 그만두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내겐 메모가 놀이다. 하루 종일 해도 지겹지 않은 놀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는.
충분히 답이 됐지는 모르겠다. 분명 부족할 것이다. 혹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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