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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노트

쓰레기 봉투

by 오류정 2021.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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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봉투 / 오류

밤 9시 알람이 울리면
어디서 기어 나왔는지 거리엔 온갖 쓰레기들이 일시에 버려진다.
흘러 흘러 지하로 들어간다.

이미 지하는 쓰레기들로 만석.
검은 터널 지나 큰 쓰레기봉투가 입을 벌린다.
봉투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음식물, 버러지, 배설물, 온갖 것들이 한데 모여
앞으로 밀고 뒤로 밀고 옆으로 민다.
서로 들어가겠다 몸을 비빈다

봉지는 왠만해선 터지는 일이 없다.
드라마 같은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이리 비비고 저리비비다
다 같이 비빔면이 된다.
가끔 상큼한 과일도 뒤섞이지만  
흔들흔들흔들흔들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몇 번 출렁이면
감촉같이 똑같은 비빔면이 된다.

봉투 속에 들어온 이상
마스크는 무용지물
비린 냄새는 빈틈을 놓치는 법이 없다. 
막으려 할수록 더 빠르게 달라붙는다.
온몸에 코팅된다.

내가 음식물이었나 벌레였는지
잊어버리고 비로소 하나가 된다.

오늘은 오염수치에 빨간불이다.
난데없이 머리 위에 팬이 위이잉 돈다.
점점 더 강하게 돈다.
다 갈아버릴 듯 
나도 돌고 너도 돌고
돌고 돌다

덜컥, 다시 봉투 입이 열린다.
열리고 닫히고
나는 매일 쓰레기봉투 속으로 들어간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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