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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오랜 친구와 이별했습니다.

by 오류정 2022.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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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가 담배를 끊으라 권유했다. 여태 대부분 부탁에는 ‘Yes’를 하는 나였는데 이건 금방 ‘Yes’가 되질 않았다. ‘Yes’를 하긴 쉬웠지만 속이는 게 싫었다. 담배를 끊겠다고 말은 하고 뒤에서 몰래 담배 피우는 것. 지속적으로 여자 친구를 속이는 것 그게 싫었다. 만약 그리 되면 앞으로 그 사람의 눈을 당당히 쳐다볼 자신이 없게 되는 거니까.

담배를 끊었다 다시 피웠다를 다섯 번쯤 반복했다. 가장 오래 끊은 적은 6개월이었고, 가장 짧게 끊은 적은 2.5일이었다. 한 달 전에도 끊으려고 노력했다. 보건소 금연 클리닉을 찾아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조제를 처방받았고 2.5일 버티다 포기했다. 다시 보건소를 찾아가 금연약을 처방해달라 요청했다. 내과 진료를 한 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을 짓는데 약사님이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약을 먹었는데 머리가 띵하거나 울렁거리면 약을 드시면 안 된다고 했다. 약을 받자마자 알약 한 알을 먹고 다시 금연에 돌입했다.

첫날은 무사히 넘겼다. 금요일이었지만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았고 가급적 누워서 보냈다. 둘째 날도 알약을 하나 먹고 버텼다. 머리가 띵한 건 없었는데 울렁 거림이 있었다. 약사가 말한 부작용이었다. 물을 마시며 울렁거림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문제는 셋째 날이었다. 이틀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에, 이대로 밀고 나가면 성공하리란 기대감에, 역시 나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에 사로잡혔다. 기분의 온도가 점점 상승하던 그때, 어떤 이유에선지 갑자기 수영이 하고 싶어졌다. 금연 욕구가 이상한 방향으로 선회했다. 다짜고짜 옷을 챙겨 입고 집 근처 실내 체육관으로 향했다. 걸으며 생각했다. 일요일 자유수영은 오후 4시까지니까 적어도 1시간은 물속에서 마음껏 물장구를 칠 수 있겠구나 좋아하며 걸었다. 수영장 입구에 도착했는데 금일 수영은 일찍 종료한다는 안내문이 보였다. 순간 속에서 가슴에서 화가 솟구쳤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했다는 화였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생긴 화였다.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내가 되어버렸다. 편의점 씩씩대며 걷다가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내 손엔 다시 담배가 들려있었다.

“레종 하나 하고 라이터 하나 주세요.”

2.5일을 참았다 피는 담배는 달았다. 하얀 연기를 후하고 내뱉었다. 연기가 자유롭게 흩어졌다. 자유롭게 흩어지는 연기를 보며 ‘아, 이번에도 실패구나.’ 했다. 주변에 담배를 끊은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가까이는 친동생이 끊었고 인천 사는 기재형도 담배를 끊었다. 어떻게 끊었냐고 물었더니 답은 둘 다 같았다. 그냥 끊었다였다. 말만 들으면 누구나 끊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말속에 과정은 포함되지 않아 어려움은 짐작이 되질 않았다. 담배 끊는 사람은 진짜 독종이라고 하던데 두 사람은 독종이 확실했다.

흡연을 시작하는 애연가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불평을 들었을 때 나는 스몰 스텝 전략의 특별한 한 형태를 권해 보았다. 그들은 모두 “담배는 내 친구”라고 말한다. 웃자고 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냥 하는 소리도 아니었다. 내가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애연가들이 자식을 꾸준히 돌볼 수 없었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누구에게도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을 수 없었고 화가 나도 혼자 삭이는 버릇을 들인 것이다.
흡연과 같은 자기 의존은 자주 쓰는 방법이지만 삶의 역경에 대응하는 전략으론 아주 형편없는 방법이다. 우리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다른 사람의 손길을 요청하도록 생물학적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한밤중에 무서운 꿈이나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난 아이를 떠올려 보라. 아이는 본능적으로 부모에게 달려간다. 엄마와 아빠에게 매달려서 몇 분 정도 마음을 달래고 나서야 부모의 품에서 잠이 든다. 이런 자연적인 대응 과정이 부모의 육체적, 감정적 결손으로 인해 중단되면 아이들의 본능은 자기 의존과 금욕으로 대체된다. 이런 아이가 어른이 되면 담배나 음식, 또 다른 중독성 물질을 의지할 만한 친구로 삼고 거기에서 지속적인 위안을 받는 것이다. 질병이나 비만,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한 부작용을 안겨 주는데도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벗어나려고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친구’없이 살아간다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반복의 힘, 145p)


<<아주 작은 반복의 힘>>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어릴 적 부모의 육체적, 감정적 결손이 중단되면 그 아이는 커서 자기 의존으로 담배를 찾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또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벗어나려면 실패한다고 한다. 보건소와 약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으니 나에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릴 적 부모의 육체적, 감정적 결손은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엔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일하는 중이셨다. 집에 가방을 던져놓고 엄마가 일하는 떡볶이 가게를 자주 갔던 기억이 있다. 어릴 적 잦은 포기를 일삼던 내게 아빠는 말씀하셨다. 그렇게 물러 터져서 어떻게 살아가냐고. 그래서일까 난 여전히 물러 터진 삶을 사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건 피하고 쉬운 것만 찾아 계속 헤매는 건지도 모르겠다. 또 독종이 아니라 해낸 일보다 해내지 못한 일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노량진 1타 강사 지영 선생님 이야기가 떠오른다. 선생님, 공부하고 싶은데 집중이 안돼요, 살 빼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요라고 얘기하는 학생들에게 지영 선생님은 말한다. “공부하고 싶으면 집중해서 공부해, 살 빼고 싶으면 굶어. 얘들아, 나 하나 컨트롤 못하면서 세상을 어떻게 컨트롤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내 마음대로 돼, 독해야 해.” 

게리 비숍의 말도 귀에 들린다. ‘당신은 의지가 있는가? 다시 한번 묻겠다. 당신은 의지가 있는가?’ 의지가 없다. 이게 대답이다. 의지가 없으니 끊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사실 끊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끊어야 하는 이유는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끊지 못할 이유는 찾으면 무한대로 찾을 수 있다. 끊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없으니 여태 실패했던 거였다. 왜 끊어야 하는가부터 생각해야 했는데 어떻게 끊어야 할지만 생각했었다.

오피스텔 1층 휴게 공간 쓰레기통에 담배를 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그리 만들었다. 그동안 담배는 내게 오랜 친구였다. 오랜 친구에게 방금 작별을 고했다. 인사도 했다. 그동안 함께여서 고마웠다고. 덕분에 덜 외로웠다고. 많은 위안을 줘서 고맙다고. 의지할 수 있고 기댈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그리고 약속했다. 이젠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살겠다고. 머릿속 도마뱀이 속삭인다. ‘전자 담배는 괜찮아. 아무도 모를 거야.’ 다시 1층에 내려갔다 와야겠다. 2022년 1월 22일 새벽 6시 30분  오랜 친구와 이별했다. 책임질 무언가가 있어야 사람은 더 성장한다 얘기하던 대표님이 떠오른다. 이제야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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