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중 가장 만들기 어려운 습관이 운동 습관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학창 시절엔 공부가 하기 싫어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때는 운동이 스트레스 해소 도구였고 도피처였다. 하루 종일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된 후 다른 해소 도구를 찾은 뒤부터 자연스레 운동과 멀어졌다.
작년 8월 다시 운동에 흥미가 생겼다. 아니 운동을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고 해야 맞겠다. 건강에 염려가 생겼기 때문이다. 덜컥 PT를 등록했고 지금까지 38번의 PT를 겨우 받았다. PT는 매번 힘들었다. 50분의 시간이 내겐 4시간처럼 느껴졌다. 기구 운동은 맨몸 운동에 비해 조금 더 나았지만 매한가지였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마주할 때였다. 거울에 비친 아이는 몸집이 비대했고 모든 행동이 어설펐고 매 순간 머릿속으로 핑계를 만들어냈다.
“회원님, 개인 운동 나오실 거죠?”
어제 PT를 마치고 38번째 칸에 이름과 서명을 하는데 코치가 물었다. 말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또 핑계 하나를 만들었다.
“아, 제가 새벽에 듣는 강의가 있는데요, 강의 들으면서 그 시간에 나와서 개인 운동해볼게요.”
“네, 그럼 내일 새벽에 뵐게요.”
입에서 툭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말은 다시 주어 담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어제 했던 말도 머릿속에 함께 떴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이 시작됐다. 새벽 6시 35분에서 6시 45분 동안 고민했다.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인다 했는데. 그냥 넘길 수 있는 말이, 넘기기 싫어졌다. 방법을 찾기보단 핑계부터 찾던 내가 보였다. 본의 아니게 약속이 되어버린 어제의 일을 머릿속에서 빨리 꺼내고 싶었다. 겉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일단 짐 앞에까지만 가보자는 게 목표였다.
집에서 집까지는 5분 거리다. 짐 앞에서 5층을 올려다봤는데 불이 꺼진 것처럼 보였다. 속으로 ‘아싸’를 외쳤다. 혹시나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봤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음악 소리가 들렸다. 짐은 열려있었다. 이왕 온 거 코치님께 인사나 하고 가자 마음으로 겉옷을 벗고 짐에 들어섰다. 눈앞의 광경이 평소 짐과는 달랐다. 텅스텐 조명이 분위기 있게 내려앉은 짐에 10명의 사람들이 각자 운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왼편에 코치님이 보여 가볍게 목례를 하고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일단 짐에 도착했으니 목표는 이룬 셈이야’라고 생각하면서.
5분쯤 스트레칭하고 기구 중 가장 애착 가는 등 운동 기구에 앉았다. 무게 추는 빠져 있었다. 에어 팟을 귀에 꽂고 새벽 강연 링크를 클릭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20개만 해야지.’ 그렇게 1세트가 끝났다. 짐에 왔고 코치와 약속도 지켰고 운동도 가볍게 했다. 새벽부터 많은 걸 이뤄낸 날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한 세트만 더해볼까 생각하는 사이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운동에 잠시 정신이 팔려서인지, 분명 에어 팟에 강의 목소리가 들려야는데 들리지 않았다. 에어 팟은 아이폰에 연결되지 않았다. 분명 새벽까지 충전을 한 상태라 배터리엔 문제가 없었다. 왜 연결이 안 되는 거지 하며 3번의 시도를 했지만 결국 에어 팟은 연결을 거부했다. 스멀스멀 마음이 흔들렸다. 한 세트 더 해볼까 하는 마음도 싹 사라졌다. 운동하면서 강의 듣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펼쳐짐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빨리 운동을 접고 집에 가서 강의를 들여야지 하며 기구에서 일어서는데 뒤통수에 코치님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기구로 돌아왔다.
시선이 신경 쓰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짜증 났지만 이왕 왔으니 20분을 채우고 가기로 한다. 빠르게 등 운동 3세트를 마치고, 어깨 운동 1세트를 마쳤다. 짐 입구의 시계는 7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제 탈출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마침 코치님도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파란 거리를 걷다 깨달았다. 운동이 내겐 아직도 핑계를 생산하는 일로 느껴진다는 걸. 또, 새로운 시도를 통해 방법을 하나 찾았다는 걸. 평소 하던 것에 운동을 결합해보는 시도가 좋았다는 걸 말이다. 흥미는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게 삶 속으로 들어오기까진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세끼 밥 먹듯 자연스러워지려면 최소 밥 먹는 시간만큼은 써야 는데 여태 그걸 안 했다. 단순한 이치인데 이걸 부인하며 핑계만 대던 자신을 반성했다. 집에 돌아와 달력에 별을 하나 그렸다. 별을 모으는 사람이 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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