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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이 책이 되지 못한 이유

by 오류정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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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합본해보면서 갑자기 든 생각인데요, 어쩌면 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출판사 대표님과 2차 미팅이 있던 날, 뜬금없이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왔다. '소설'이라는 단어를 들은 출판사 대표님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옆에 있던 편집자의 눈도 덩달아 커졌다. 그날 함께 자리에 참석한 김성훈 작가의 얼굴은 난처한 기색으로 뒤덮였다. 출판사 대표님께선 친절하게도 소설이라는 단어를 들은 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소설은 에세이보다 훨씬 더 힘든 영역이죠라고. 

왜 내 입에선 소설 이야기가 튀어나온 것일까?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다 매거진 주제와는 사뭇 다른 가로샌 글이 쓴 적이 있었다. 쓰다 보니 주제에서 벗어난 글임을 뒤늦게 알았다. 두 개의 제목의 글은 연재 형식을 취했다. 2102호의 속사정은 3편으로, 맞선남의 오류는 5편으로 나눠 썼다. 쓰면서 혼자 재밌었다. 쓰면서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쓰면서 혼자 신났다. 맞선남의 오류의 경우는 3편만 쓰려다 2편을 추가하기도 했다. 책이 되려면 써야만 하는 글이 써야 는데 난 쓰고 싶은 글을 쓴 셈이다. 

아마 그 생각 때문일 것이다. 누가 시켜서 쓴 글이 아닌 쓰고 싶어 쓴 글 덕분에 소설도 가능하지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 뜬금없지만 '소설'이란 말을 꺼냈다. 그리고 진심이었다.  

써야 하는 글을 써야 할까, 아니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할까. 정답이야 없겠지만 여태 내가 쓴 글은 쓰고 싶어서 쓴 글이 다수였다. 출간은 일종의 투자 행위다. 출판사는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선 약 1천만 원의 돈을 투자하는 셈이다. 한데 작가가 출판사의 방향과 맞는 글을 쓰지 않고 자기 쓰고 싶은데로 글을 쓴다면 어떨까. 

결과는 뻔하다. 계약은 파기되고 책은 출간되지 못할 것이다. 책이 되려면 주제에 맞는 글을 써야 한다. 머리론 알지만 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다. 청개구리처럼. 프로는 써야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아마추어는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프로가 되기 어려운 이유다. 

내 글이 책이 되지 못한 이유는 명료했다. 써야 하는 글은 안 써서다. 써야 하는 글은 미루고 쓰고 싶은 글을 써서다. 책을 내고 싶다고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반대로 했다. 책을 내고 싶다면 주제에 맞는 글만 써야 한다. 아마추어 모드에서 프로 모드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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