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인지, 자기 계발서인지 모르겠어요. 어떤 글은 에세이 같고 어떤 글은 자기 계발 같아서 헷갈려요."
"개인의 경험에서 대부분 끝이 나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어요. 한마디로 공개된 일기 같아요."
"건설에 비유하자면 정 작가님은 이제 '기초 공사'를 끝낸 것 같아요. 이제 인테리어 하셔야죠."
어제 들은 이야기다. 출판사 대표님, 편집자님, 김성훈 작가님에게 어딜 가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길 들었다. 책도 혼자 읽고 끝내면 자신의 생각에 갇히듯,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란 것을 경험한 하루였다. 그날에 기분에, 그날의 생각에 맞춰 쓴 내 글의 결과는 허무했다. 돈(계약)과 교환되지 못했다. 개인의 일기를 돈 주고 사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글에 대해 다시금 점검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가 궁금해졌다. 검색으로 다양한 결과를 마주했고 그중 29CM 카피라이터로 활동했던 이유미 작가의 글에 공감했다. 일기는 형식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이다.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짜증 나고 우울한 감정을 시간 순서대로 쭉 쓴 글을 얘기한다. 한 단어를 쓰던, 한 줄로 끝내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에세이는 다르다. 에세이는 형식을 갖춰 쓴 글이다. 기승전결을 나눠 ‘여기서 임팩트 있게 탁 치고 나가고 말미에 감동을 주자’라며 구상해서 썼다는 말이다. 또한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가 들어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맥락도 있어야 하고 에피소드를 있는 그대로 쓰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가, 즉 왜 화가 났는지 왜 감동적이었는지를 ‘깨닫는 과정’을 한 번 더 정리한 글이 에세이다. 구성을 통해 초두엔 독자의 시선을 끌었다면 마지막은 정리하는 글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일기엔 없고 에세이에만 있는 것이 3가지다. 구성, 감정 해설 그리고 정리다. 구성은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한 것이다. 영화로 따지면 하이라이트 몇 장면을 처음에 보여주는 것과 같다. 감정 해설은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부분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의 구체적 서술을 통해 독자의 공감을 유도하는 부분이다. 감정 설명이 들어가야 독자는 비로소 공감할 수 있다. 드라마도 치면 '주인공이 혼자 독백'하는 장면에 해당하고 소설로 치면 '속마음'을 서술한다 부분에 해당한다. 마지막 정리는 이 글을 통해 어떤 것을 나누고 싶었는지를 정리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정리를 해줘야 저자가 이 글로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는 오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다.
에세이를 읽은 독자는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처음엔 흥미를 갖게 되고 다음은 감정에 공감할 것이며 마지막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구성, 감정 해석, 정리의 단계를 통해 독자는 사건을 겪은 건 글 쓰는 ‘작가’지만 마치 자신이 겪은 듯 공감하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은연중에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 나도 이런 적 있는데!’라고 하면서 공감한다.
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하고 아프리카에서 사자에게 물리는 엄청난 큰 사건보다 영화에서나 벌어질 법한 장면보다 일상의 소소한 사건이 에세이에 많이 등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자잘한 스토리에서 시작해 모두의 이야기로 써내는 스타 작가들은 그런 작은 이야기를 잘 쓰는 사람이다.
중간 점검을 받길 잘했다. 혼자 쓰고 끝냈다면 알지 못할 것들을 많이 배웠다. 내 글을 훈수를 두는 사람을 만나자 우물 안에 갇혀 도돌이표 같은 글만 쓰던 내 글에 균열이 생겼다. 이제 우물 밖 세상을 탐험할 때가 된 것 같다. 두렵다. 떨린다. 하지만 피할 생각은 없다. 포기할 생각도 없다. 두렵고 떨리다는 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준비 단계다. 살다 보면 정말 열심히 해도 안 될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렇다. 그래도 포기는 말자. 지금 잘 안 되는 건 잘 되기 위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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