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마음도 내 편이 아닌 날이 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아침에 글 한 편 쓰기는 이미 물 건너갔고 오후에도 도무지 집중이 안된 상태로 흘러간다. 남은 건 저녁 식사 후 시간밖에 없다. 마음에선 계속 의심의 소리가 새어 나온다. ‘난 과연 오늘 중에 글 한 편을 써낼 수 있을까?’
글쓰기를 피하고 싶게 만드는 소리다. 혹시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난 과연 오늘 중에 글 한편을 써낼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대답은 두 가지뿐이다. Yes 이거나 No.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 ‘난 어떻게 하면 오늘 글을 써낼 수 있을까?’
질문을 바꾸자 멈췄던 뇌가 다시 회전을 시작한다. 글을 꼭 앉아서 써야 할까? 아니다. 꼭 글을 앉아서 써야 한다는 생각이 쓰지 못하게 한 것일 수 있다. 급히 스마트폰을 꺼내 몇 자 적어 본다. 몇 자 적다 보니 쓸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생각만 하지 말고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바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무리 바빠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꼭 한다. 인스타그램의 새 글을, 유튜브 영상을, 페이스북도 피드를 확인한다. 바쁘지만 좋아하는 것에 쓸 시간은 충분한 셈이다. 어쩌면 글쓰기를 좋아하기 전에 겪는 일종의 수순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이 안 써진다는 생각이 찾아온 건 여태 노력을 해왔다는 것이다. 할 마음만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마음을 먹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음의 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그럴 때 나탈리 골드버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당신 속에서 싸움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싸우도록 그냥 내버려 두라. 하지만 그 싸움의 한 구석에서,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실제적인 마음이 조용히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 마음이 노트로 옮겨져 더 깊고 평화로운 곳에서부터 나온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 두 개의 마음이 같이 살기 때문에, 때로는 그것이 동시에 글에 표현된다. 더구나 우리는 이 두 싸움꾼들을 언제까지나 묶어 두고 억누를 재간이 없다. 억누를수록 이 싸움꾼들은 더욱 결사적으로 들고 일어서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5분 혹은 10분 동안 그들이 노트에 대고 소리치는 것을 허락해 줄 수밖에 없다. 그 감정이 이끄는 대로 글쓰기 속으로 빠져들라. 싸움을 걸어오는 목소리들에게 글 쓰는 공간을 허락하고 나면 그들의 불만이 너무도 빠르게 사그라드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52p)
마음이 싸움을 걸어오면 애써 무시하지 말자.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그들은 더 강력하게 소리칠 것이다. 대신 그들에게 마음껏 소리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자. 공간을 내어주면 금세 잠잠해질 것이다. 해보면 알게 된다. 사실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건 방법을 못해서일 확률이 크다. 방법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글이 안 써질 때도 글을 쓰는 법이 있다. 지금 마음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적어보는 것이다. 하기 싫다는 마음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적다 보면 마음은 곧 안정을 찾는다. 어느새 다시 쓸 수 있는 모드로 전환된다. 마음은 연두부보다 연약하다. 그러니 이제부터 단단한 손을 믿어보자. 손을 믿고 마음에 사다리를 내리고 마음껏 내려가서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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