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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과대평가 되었다.

by 오류정 2022.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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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과대평가되었다. 타고난 목소리와 체형 덕분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굵은 목소리 덕분에 중창단 솔로를 맡았다. 솔로를 맡아 좋았던 건 잠시였다. 솔로는 제일 먼저 노래를 시작해야 하는 사람이다. 만약 솔로가 시작부터 음을 틀리거나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공연은 망하게 된다. 부담감이 얼마나 컸는지 가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손가락에 쥐가 났었다. 부담감은 수만 번 연습으로 이어졌다. 꿈에서도 연습했다. 첫마디를 시작으로 5초 정도 뒤부터 사람들이 도와주리란 걸 잘 알고 있다. 눈을 질끈 감으며 있는 힘껏 목소리를 짜내기를 수차례 했고 다른 사람의 소리가 합쳐지는 순간엔 안심했다. 내 몫은 여기까지다. 소리가 합쳐지는 순간까지 해내면 그 뒤로 나는 입만 뻥긋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중고시절 노래를 다 외우지 못하고 무대를 설 때도 종종 있었다.

20대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타고난 체형 덕분에 사람들에게 인사를 많이 받았다. 정장을 갖춰 입고 있으니 나이가 평소보다 좀 더 들어 보였기 때문일까. 매년 3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사원은 내게 90도로 인사했다. 주로 엘리베이터에서였다. 사실 나도 신입 사원인데 왜 다들 내게 인사를 그렇게 하는지 그땐 이유를 몰랐다. 계속되는 인사를 나중에는 즐기게 됐다.

소개팅에서도 목소리는 통했다.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고 소개팅에 나가면 상대방은 늘 부푼 기대를 안고 나왔었다. 기대는 5초면 사라졌지만. 사실 열거하자면 2시간 반을 연속으로 말할 정도로 많다.

과대평가는 독이 되기도 했다. 상대방의 일방적 기대는 큰 실망이 되어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스스로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외딴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온라인 환경은 딱이었다. 그곳에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편안한 곳에서 차근차근 내가 좋아하고 필요한 것들을 쌓았다.

여전히 난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고 나니 그간 과대평가를 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별거 없는 저를 과대평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그땐 미안했다고. 마지막으로 명절 연휴 잘 보내시라고 말이다. 과대평가에 언제가 보답할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오늘도 작은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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