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왔어요.”
“어~ 왔어.”
엄마는 떡국을 준비하고 계셨고 아빠는 인기척이 없었다. 외투를 벗어 놓고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를 도왔다. 거의 다 됐으니 절하고 밥 먹자고 하신다. 거실로 나가니 어느새 아빠는 소파에 앉아계셨고 엄마도 옆에 앉으셨다. 작년에는 바닥에 앉으셔서 절을 받으셨는데 올해는 무릎 때문인지 절을 소파에서 받으시는구나 했다. 큰절을 하는데, 엄마가 손수건으로 콧물을 닦고 계셨다. 바닥에 무릎을 꿇는데 눈물이 샜다. 애써 들키지 않으려 코를 조금 들이키며 일어났다. 아무 일도 없는 척했다. 들키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생각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안았지만 아마 10초 정도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하던 거 잘해봐라. 건강이 제일이다. 몸도 좀 만들고.”
“네.”
10초 훈계를 뒤로 한 채 주방 뒤편으로 엄마를 따라 들어갔다. 새우튀김 하는 걸 도와드렸고 아침 식사가 준비돼 함께 떡국을 먹었다. 아무 말 없는 조용한 식탁이었다. 떡국과 배추김치, 새우튀김과 야채튀김 그리고 동치미가 상에 올랐다.
“니는 이거 먹지 마.”
떡국을 한술 뜨기도 전에 아빠는 내게 말했다. 독립하기 전이었으면 순간 울컥할 뻔했는데 오늘은 아무렇지 않았다. 최근 한 달간 아침에 과일만 먹는 게 습관이 자리 잡은 후라 괜찮았다. 떡국을 먹는데 아빠의 말이 위에 자극을 줬다. 구태여 얘길 하지 않아도 안 먹었을 텐데 얘길 듣고 나니 먹고 싶어졌다. 떡국을 씹으며 새우튀김을 계속 쳐다봤다 달력을 쳐다봤다 했다. 5분 만에 떡국 한 그릇이 바닥을 보였다. 그릇을 싱크대로 가지고 가 설거지를 시작했다.
“얼마 안 있으면 니 생일인데 옷 한 벌 해 입어라.”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내게 봉투를 건넸다. ‘거절해야지’라는 마음의 소리는 무시했다. 덥석 돈봉투를 받으며 말했다.
“잘 쓸게요 엄마.”
‘그리고 이따 집에 갈 때 새우튀김 챙겨가라.’ 엄마의 눈이 이렇게 말을 했다. 엄마는 항상 아빠 몰래 나를 챙겨주셨다. 아들의 심정을 어루만져 주셨다.
설거지 후 과일을 깎아 드리며 식탁에 앉아 아빠의 궁금증을 해소시켜드렸다. 캡 컷 동영상 편집하는 법을 종이에 하나씩 순서를 적어가며 설명하고 3번을 앞에서 시연했다. 복습 겸 직접 해보라고 했더니 이제 좀 알겠다 하신다.
오피스텔로 돌아와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9시 30분이었다. 책을 조금 읽다 틱톡 영상을 보다 단체 카톡방에서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새배 이모티콘을 대량으로 전송하니 어느덧 점심시간. 어제 내린 눈 때문인지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어 강구(강서구청) 거리를 배회하다 뼈다귀 해장국을 먹어야겠다 생각을 했다. 뼈다귀 해장국집은 쉬는 날이었다. 차선책으로 최근 생긴 가게에 들어갔다. 언니네 닭칼국수를 팔았다.
닭칼국수를 주문하고 막걸리도 한 병 주문했다. 20분이 흘렀을까 수북하게 담긴 닭칼국수가 식탁에 올라왔다. 막걸리를 3잔쯤 마시고 국물을 떴는데, 간이 딱이었다. 이 집 간 좀 하네라고 생각하며 닭 반마리를 앞접시에 덜어 해체작업을 진행했다. 닭다리는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소독약 냄새가 났다. 이런 날 이게 어디냐며 군말 없이 국물까지 거의 다 비웠을 때쯤 TV에서 해철이 형 노래가 흘러나왔다.
“숨 기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우린 서로 이렇게 아쉬워 걸 아직 내게 남아 있는 많은 날들을 그대와 둘이서 나누고 싶어요.~”
숨 가쁘게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옆에 있어도 언제든 편하게 전화 통화가 가능해도 우린 서로 아쉬워한다. 많은 날이 남아있을 것 같지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시간을 금세 간다. 45년도 그렇게 흘러갔다. 내게 얼마나 많은 날들이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남은 날들 부모님과 다투지 않고 잘 지내려고 한다. 효도는 못하겠지만 속 썩이는 일은 다시 하지 말자며 산다. 받은 사랑은 갚지 못해도 마음만은 편하게 해 드리는 중이다. 물론 부모님은 편하지 않겠지만. 닭칼국수집을 나서는데 빗물, 아니 눈물이 떨어졌다. 머리 위로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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