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친 글쓰기” 마흔한 번째 화두! 두둥! - 마지막 추억 소환 - 2000년 1월 1일 0시 ^^
2000년 1월 1일 0시! 밀레니얼 시대의 시작. 안 올 것 같았던(당시에) 날이 드디어 오고 말았던 날. 오류는 군대에 있었다. 또래 친구들보다 군대를 일찍 간 편에 속한 오류가 2000년을 맞이한 건 제대를 약 2달 앞둔 어느 날에 불과했다.
그날 나는 당직이었다. 오전 9시부터 내무반에 전화가 빗발쳤다. "00 이병, 면회요." "00 일병, 면회요." "00 상병, 면회요." 후임들은 모두 축구를 하러 나간 탓에 전화는 오류 병장의 몫이었다. 전화기를 오른편에 위치시키고 TV를 켰다. 새해를 맞이한 탓에 TV 프로그램 대부분은 활기찼다. 덕담으로 시작해서 덕 답으로 끝나는, 약간은 식상한 듯한 프로그램이 다수였기에 채널을 돌리는 왼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오류 병장님, 떡이 왔는데요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꿀떡이 행정반으로 배달되었는데, 행정반 당직 일병이 나에게 가져오며 물었다. 떡은 두 박스였고 택배 용지에는 받는 사람이 A일병으로 되어 있었다. A일병의 여자 친구가 보냈거나 부모님이 보낸 것이겠지. 내무반 정 가운데 떡 두 박스를 올려놓고 TV를 보고 있는데 배가 출출했다. '한 개만 먼저 맛볼까, 한 개 정도는 아무도 모를 거야.'라며 윗 박스를 열었다. 떡은 흰색과 분홍색이 반반씩 들어 있었다. 공평하게 흰색 하나, 분홍색 하나씩을 짚어 입에 넣었다.
고소향 향내가 입안을 감돌고, 달콤한 꿀이 입안에 쫙 퍼졌다. 씹으면 씹을 수록 쫄깃한 식감은 덤이었다. 이런 걸 꿀맛이라고 하는 건가 생각했다. 마침 TV에 TV 가요 20 프로그램이 재방을 시작했다. 열심히 걸그룹의 몸놀림을 보면서 왼손은 계속 떡 박스를 왔다 갔다 했다. 축구 경기에서 이겼는지 동기인 육병장이 당당하게 내무반 문을 걷어차며 들어왔다.
"어, 혼자 뭐 먹냐."
"꿀떡, 엄청 달아."
"야, 근데 누구 앞으로 온 건데 니가 먼저 개봉하면 어떻게?"
"괜찮아, 몇 개 안 먹었어."
"몇 개가 아니라 혼자 한 박스를 다 먹었구먼."
"아냐~, 어, 이상하다, 진짜 몇 개 안 먹었는데."
왼손이 쉼 없이 움직인 탓에 윗 박스에 떡은 고작 10개 남짓 남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게 다 TV 가요 20 때문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갑자기 B일병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빨리 이 위기를 모면해야 했다. 윗 박스를 들고 행정반으로 건너가 쓰레기 통 속에 처박고 다시 내부반으로 건너왔다. 다행히 그제야 후임들이 우르르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모를 거야. 이건 나만 아는 1급 기밀이니까. 아참 행정반 B일병이 아는구나. 근데 얘는 눈치가 없는 애니까 그리고 바쁘니까 괜찮을 거야.'는 내 생각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A일병과 B일병이 동기였던 걸 잊고 있었다. 저녁 점호 때 B일병이 A일병에게 얘기했나 보다. 그렇게 밀레니엄 첫날이 지나고 둘 째날이 되었다.
오침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A일병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A 일병."
"일병 A, A, A."
"나, 미안한 게 있는데, 용서해 줄 거야?"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뭐가 아냐, 내가 미안한 게 있데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사실, 내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충성."
뭐야, 잘못한 걸 얘기해주려는 데 A일병이 도망치듯 내무반을 빠져나갔다. '뭐야, 다 알고 있는 건가. 이따가 PX 가서 초코파이 2박스 사서 줘야겠다.' 내심 열 받은 기색 안내는 A일병이 고마웠다.
그 사건 이후로 오류 병장의 별명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떡 병장님.' 혼자서 떡 한 박스를 다 처먹었으니, 그리 불릴만했다. 꿀떡은 혼자 먹어야 제 맛이다. 꿀떡은 진짜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그래서 꿀 떡인가. 아무튼 밀레니엄 첫날은 내게 꿀떡이었다. 달달한 해, 밀레니엄이 그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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