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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의 오지랖이 유용의 오지랖이었던 날

by 오류정 2022.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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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살고 있는 오피스텔 1층 도시락 사장님이 씁쓸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발견하고 말을 건넸다.

"오늘 아침에 비가 왔나 봐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도시락 사장님은 얼굴빛이 어두웠고 웃음기는 없었고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캠핑 준비는 잘하고 계세요?"
"아,,,,니요. 마음 접었어요. 같이 하려던 친구가 안 하겠다고 해서요."
"무슨 고민 있으세요?"
"후.......... 사람 때문에 많이 힘드네요."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장님이 안 돼 보였다. 작년, 그러니까 3개월 전에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마주했었기에 더욱 그랬다. 매니저 하던 친구가 그만둬서 제주도로 마음 정리하러 다녀오셨던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이런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여러모로 안쓰러웠다. 젊은 사장님이 고생이 많다 생각했다.

"한 마디로 줄여서 얘기하면 태어나서 그런 인간은 처음 봤어요."

사장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설움과 미움이 가득 느껴졌다. 힘내라는 말 대신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옛날에 정약용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최고위직에 계셨었는데, 일순간 유배자 신분으로 전락했던 분이에요.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지고 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어려움에 빠졌었죠. 보통 이런 경우라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거나, 남들 욕을 하고도 충분히 남을 상황인데요, 이 분은 유배지에서도 두 아들을 편지로 훈육하셨고 유배 기간 동안 500권의 책을 집필하셨어요. 대단하지 않나요?"

얘기를 들어줘야 했는데 괜한 얘기를 꺼냈나 싶었다. 하지만 오지랖은 계속됐다.

"사람 믿지 마세요. 기대도 하지 마시고요.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는 거 그만하세요. 저도 예전에 많이 해봐서 드리는 말이에요."

가만히 서서 줄담배를 5개비 피우시던 사장님에게 오늘 내가 건넨 말은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대화를 주고받으며 답답한 마음 정도는 조금은 풀리지 않았을까. 작년 연말에 고마운 분들께 도시락을 무료로 나눠주시려던 사장님이 선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서 훌훌 털고 밝은 모습을 되찼으면 좋겠다. 오늘은 무용의 오지랖이지만 나에겐 유용의 오지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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