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동화 중에 『핑크대왕 퍼시(Percy the Pink)』라는 재미있는 작품이 있다. 퍼시는 핑크색을 광적으로 좋아하여 자신의 옷을 포함한 모든 소유물을 핑크색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매일 먹는 음식도 핑크 일색이었다. 그러나 핑크대왕은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성 밖에 핑크가 아닌 다른 색들이 수없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핑크대왕은 백성들의 모든 소유물을 핑크로 바꾸게 하는 법을 제정했다. 왕의 일방적인 지시에 일부는 반발했지만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옷과 그릇, 가구 등을 모두 핑크색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핑크대왕은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아직도 핑크가 아닌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나라의 모든 나무와 풀과 꽃, 동물까지도 핑크색으로 염색하도록 명령했다. 대규모 군대가 동원되어 산과 들로 다니면서 모든 사물을 핑크색으로 염색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심지어 동물들은 갓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핑크색으로 염색되었다.
드디어 세상의 모든 것이 핑크로 변한 듯 보였다. 그러나 단 한 곳, 핑크로 바꾸지 못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하늘이었다. 제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이라도 하늘을 핑크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며칠을 전전긍긍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자, 핑크대왕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스승에게 방법을 찾아내도록 명령했다. 밤낮으로 고심하던 스승은 마침내 하늘을 핑크색으로 바꿀 묘책을 찾아내고는 무릎을 쳤다.
핑크대왕 앞에 나아간 스승은 “이미 하늘을 핑크색으로 바꿔놓았으니 준비한 안경을 끼고 하늘을 보라”고 했다. 핑크대왕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스승의 말을 따라 안경을 끼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구름과 하늘이 온통 핑크색으로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승이 마술이라도 부려서 하늘을 핑크색으로 바꿔놓은 것일까? 아니다. 스승이 한 일이라곤 핑크빛 렌즈를 끼운 안경을 만든 것뿐이었다. 하늘을 핑크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대신 하늘을 핑크색으로 보이게 할 방법을 찾아냈다. 핑크대왕은 크게 기뻐하며 그날 이후 매일 핑크 안경을 끼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백성들은 더 이상 핑크색 옷을 입지 않아도 되었고, 동물들도 핑크색으로 염색할 필요가 없었다. 핑크 안경을 낀 대왕의 눈에는 세상은 언제나 핑크였다.
우리도 각자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핑크대왕 퍼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각자의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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