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만에 살사 동호회 동기들이 모였다. 4인 이상 모임 금지 기간이라 딱 4인만 모였다. 모임 장소는 합정동 행진이었다. 행진은 합정역에서 마포구청역 방향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급랭 삼겹살을 파는 가게다. 수요 미식회에 소개된 적도 있다. 저녁 시간에 가면 붐비는 손님들로 인해 최소 30분에서 1시간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집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약속 시간은 저녁 6시였는데 5시부터 가서 기다렸다. 오후 5시의 행진은 다행히 3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행진 앞에 대기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저녁 6시 10분, 4인 중에서 3명이 모였다. 목욕탕에서 가져온 듯한 사물함에 옷을 보관하고 자리에 앉아 급랭 삼겹살과 하이볼을 주문했다. 달달한 하이볼, 이상하게 요즘 달달한 게 좋다. 행진의 대표 메뉴 급랭 삼겹살이 나왔다. 불판의 불은 자리에 앉자마자 켜 두는 걸 잊지 않는다. 급랭 삼겹살 한 점에 고추장 살짝 올리고 파 겉절이 올려서 젓가락으로 반으로 접는다. 양손으로 귀한 물건이 떨어질 새라 입에 넣는다. 씹는 순간 스르륵 눈이 감긴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 이 맛이야.' 씹으면 씹을수록 입에서 아삭 거리는 소리가 난다. 오른손이 소주를 찾는다. 목으로 넘기기 바로 직전에 소주를 입에 넣어준다. '크아~~~~.' 소리가 나오면서 목이 깔끔해진다.
저녁 6시 50분, 드디어 마지막 주인공이 도착했다. 드디어 백 청국장을 주문한다. 이 집에서 절대 놓쳐선 안 되는 게 메뉴가 바로 백 청국장이다. 보통 청국장이라고 하면 갈색 빛을 띤 걸쭉한 청국장을 떠올린 텐데 이 집 청국장은 아이보리 색이다. 맛도 일품이다. 앞서 소개한 단계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소주까지는 똑같은데 소주 다음에 청국장을 한 숟깔 추가한다. '이야~~~~~~.' 행복이 목끝까지 차오르는 맛이다.
4명이서 가볍게 8인분을 끝내고 껍데기를 주문했다. 행진에서 껍데기를 주문해야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껍데기를 주문하면 직원분께서 두꺼운 철제 판을 가져오신다. 그리고 그 판으로 체중을 실어 껍데기를 꾸욱 누른다. 다른 음식점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다른 음식점에서 껍데기를 굽다 껍데기가 말리고 갑자기 툭 껍데기가 제멋대로 옆 테이블로 날아가는 민망한 장면이 연출되는 때도 있지만 행진에선 그럴 일이 없다.
온몸으로 구워주신 껍데기를 간장 고추 소스에 살짝 찍어 콩고물로 다시 코팅해 입에 넣는다. 천국이 따로 없다. 여기가 바로 천국인 것이다. 껍데기를 다 먹은 후에 또 먹어야 하는 메뉴가 또 있다. 바로 볶음밥이다. 볶음밥을 주문하면 주방에서 볶음밥을 이 조리돼서 나오고 반숙 계락 프라이도 따라 나온다. 볶음밥을 철판에 탁하고 엎은 후에 그 위에 반숙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계란을 숟가락으로 잘게 쪼개고 밥을 평평하게 펴면 끝이다. 밥에 고기도 들어가 있다는 사실.
짧게 쓰려고 했는데 음식 얘기로 글이 길어졌다. 쓰면서 침이 입에 고인다. 사실 글의 서두에 예전만큼 소주가 좋지 않다고 썼는데 그 문장을 마지막으로 옮겼다. 아무튼 정리하면 이렇다. 예전만큼 소주가 좋지 않다. 소주가 바로 인생이야 라고 생각하던 소주를 물처럼 마시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소주보단 맑은 정신이 좋다. 소주를 마시고 기분 좋게 배를 두드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옛일이다.
강신주 작가의 <감정 수업>에 음주욕에 대한 정의가 떠오른다.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 화려했던 과거로의 귀환 때문에 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때 나도 그랬다. 사실 지금도 가끔 술이 들어가면 옛날 얘길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과거는 제대로 된 과거일까? 잘 모르겠다.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인데 어쩌면 화려했던 순간만 왜곡해서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안 좋은 기억은 모조리 지워버린 채로. 과거는 과거다. 지난 간 것은 지나간 데로 다 의미가 있겠지만 과거보단 오늘에 최선을 다해 사는 중이다. 아직 술이 덜 깼나 보다. 맑은 정신으로 살고 싶다. 맑은 정신을 위해 해장하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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