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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by 오류정 202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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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메일을 받았다. 메일 제목은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였다. ‘드디어 내게도 이런 날이.’ 2022년 새해 초부터 좋은 일이 생기다니. 여태 남 이야기로 여겼던 일이 내게도 벌어지니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설렘을 안고 메일을 열었다.

브런치에 처음 지원한 날이 떠오른다. 지원하고 다음 날부터 시간당 한 번씩 메일함을 새로고침 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브런치에서 메일이 도착했다. ‘아쉽게도’로 시작하는 메일이었다. 첫 번째 탈락이었다. 탈락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7번의 탈락을 마신 뒤에야 8번째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

회사 대표님을 모시고 신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그랬다. ‘글쓰기는 아니라고.’ 예술 계통에 소질이 있는 건 맞는데 그래도 글쓰기는 아니라고 했다. 아니라고 하니 청개구리 심보가 고개를 들었다. 오기가 작동했다. 삶 전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라고 했던, 아니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첫 회사를 그만두겠다 했을 때, 사진을 직업으로 하겠다 했을 때, 영상을 손 데려고 할 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춤에 발을 들일 때, 합창을 시작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건 아니라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반대로 했다. 말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말리는 대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당신은 아닐지 모르지만 난 다를걸’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내 선택은 옳았다. 내가 선택했던 그 일들은 내 삶에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남들의 말을 듣지 않고 해왔던 것들이 말이다.

브런치에 처음 탈락하고 계속 도전한 것도 같은 이유일지 모른다. 누군가는 쉽게 브런치에 합격하는 걸 볼 때마다 속이 쓰렸다. 왜 그들은 되고 나는 안 되는 걸까 자책도 많이 했다. 글쓰기의 재능 없음을 탓하기도 했다. 진짜 아닐까 의심도 했다. 누군가는 한 번에 해내는 일을 나는 1년을 노력해야 했다. 8번째 합격하고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브런치는 면접을 통과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지만 지금은 그렇다. 면접은 서류 심사다. 작가 소개, 활동 계획 그리고 지원 글이 통과가 돼야 한다. 브런치를 회사 면접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회사 면접을 볼 때에도 자기소개가 있듯 브런치에도 작가 소개가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무엇을 써야 할지 답은 분명하다. 합격하도록 써야 한다. 내 얘기를 쓰는 게 아니라. 책이 독자를 향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단번에 합격한 사람들은 이걸 알고 있었는데 고작 이걸 아는 데도 난 1년을 써야 했다.

덕분인지 부담인지 브런치에 합격하고도 글을 쓰지 못했다. 누군가는 브런치를 개인 블로그처럼 자유롭게 활용한다지만 난 그게 되질 않았다. 블로그 글은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브런치는 아니었다. 브런치에 그렇게 쓰면 안 돼 라는 스스로 그은 경계선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경계선을 재배열하는데요 꼬박 6개월이 걸렸다. 브런치에 글 쓰는 두려움은 여전하나 전보다는 작아졌다. 작년 11월 브런치 북을 겨우 완성했다. 브런치 북을 완성한 뒤 기분은 하늘을 날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막 했다. 자랑을 들은 상대방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게 그랬다. 브런치가 뭐냐고. 먹는 거냐고.

브런치 북 결과는 역시나였다. 내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대가 컸으니 실망도 컸다. 실망의 원인이 기대란 걸 알면서도 기대는 쉽게 포기가 안된다. 어제 학인이 내게 물었다. 요즘은 브런치에 글을 안 쓰냐고. 학인의 질문으로 작년 11월 브런치 북 완성 후 한동안 접속하지 않았던 브런치에 접속했다. 알림 창에 메시지가 가득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어떤 글은 조회 수 1000을 돌파했고, 라이킷의 메시지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었다. 누군가 내가 남긴 글을 좋아해 주고 봐준다는 사실이 기뻤다.

2021년에 가장 값진 경험이 뭐냐 내게 묻는다면 나는 ‘브런치 합격’이라고 말한다. 먹어서 배부른 것도 아닌 브런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브런치는 내게 대단함 그 자체다. 애써 노력해서 얻었기 때문이다. 결론까지 오는데 꽤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브런치에서 받은 메일은 기대했던 ‘출간 제안’은 아니었다. 제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또 하나 배웠다. 내가 받은 제안은 ‘기타 제안’이었다. 주요 제안이 아니라 아쉽지만. 기대했던 제안은 아니었지만 새해 첫 제안이다. 어쩌면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 건지 모른다. 제안 주신 출판사에 감사 메일을 보냈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우연은 기회의 다른 이름이란 걸 경험으로 안다. 새해 첫 제안은 비록 ‘기타 제안’ 일지 모르나 난 ‘메인 제안’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2022년 시작이 좋다. 올해는 또 어떤 새로운 우연을 만나게 될지 무척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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