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얕잡아 보던 시절이 있었다. 순간 뚝딱 글을 써내는 나를 대견하게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거봐 쓰니까 되네. 해보니 별거 아니었어.’ 하며 자만했었다. 뭐든 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아무 때고 생각나는 대로 글쓰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시작도 못하는 남들도 있는데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 덕분에 글쓰기 두려움을 내게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 속에 있는 이야기를 길어 올리다 보니 어느새 블로그 발행 글 개수가 1,000개가 됐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쓰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글쓰기에 소심해졌다.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던 의욕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흥미를 잃었다. 글을 쓰긴 썼는데 봐주는 사람이 없음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1,000개나 글은 썼지만 블로그 방문자는 한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혼자 기대하고 혼자 상처받고 혼자 실망했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내 글에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된 시점이.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답은 뻔했다. 방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내 글이었다. 아무렇게나 막 쓴 글을 쳐다봐줄 거란 기대가, 쓰면 쳐다봐주겠지 하는 내 욕심이 보였다. 어느 날 이런 글을 마주했다.
제목, 독자가 가장 먼저 읽는 글
(글의 품격, 146p)
한 번도 제목을 고민해본 적 없었다. 그러고 보니 블로그에 글 쓸 때도 제일 처음 입력해야 하는 것도 ‘제목’이었다. 여태 난 글을 휙 쓰고 제목은 내 마음대로 붙였었다. 바꿔야 했다. 제목부터 쓰고 글을 쓰는 걸로. 순서만 바꾸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순서를 바꿨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글이 써지지 않았다. 도대체 제목이 뭐길래 글이 안 써지는 건지. 검색창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했다. 어슴푸레 답이 보였다. 팔리는 글, 팔리는 책에는 하나같이 근사한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근사한 제목 짓는 방법도 나와있었다.
방법을 알았다고 금세 상황이 개선되는 건 아니다. 바뀐 건 하나도 없었다. 머리로 안다는 건 모른다는 것과 마찬가지일 때가 많다. 알았으니 이제 하나씩 적용하며 배움이 필요했다. 제목을 고민했다. 제목부터 고민했다. 어떤 글을 클릭하는지 나도 살폈다. 유튜브 조회 수가 높은 영상들의 제목도 메모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던 시기에서 독자를 염두하고 제목을 고민하던 시기로의 발전이 일어난 셈이다. 글쓰기는 오직 글을 쓰면서만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쓰면서 또 이렇게 하나 얻었다. 글쓰기에도 나름 단계적 발전이 있다 생각하니 앞으로 오를 단계가 여전히 많이 남았음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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