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잘 써지는 날이 있고 잘 써지지 않는 날이 있다. 오늘은 잘도 아니고 아예 써지지 않는 날이다. 어제는 <책과 강연 백일 글쓰기>의 포부를 담아 사명서까지 썼는데, 어떻게든 쓰겠다 다짐했는데 하루 만에 글이 한 글자도 써지지 않는 상태가 돼버렸다.
낮 12시까지 글 한 편 발행하기로 한 1차 약속은 어긴 지 오래됐고 2차 약속인 저녁 6시가 다가오고 있다. 슬슬 마음이 급해진다. ‘뭘 쓰지? 뭘 쓰지?’ 읽고 있던 책에서 어떤 영감도 받지 못했다. 눈에 띌 만한 사건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다. 임시 저장한 글 8편은 이어서 쓰기가 잘 안 된다. 밖에 나갈까, 그러기엔 영하 10도의 날씨가 두렵다. 따뜻한 방바닥에 맨발을 데고 어떻게든 글을 한 편 쓰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방바닥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 넷플렉스를 잠깐 켜고 유튜브도 켜봤지만 어느 것 하나 집중이 안 되는 날이다.
긴급 처방이 필요했다. 이대로 놔두면 아무것도 못쓰겠다 싶었다. 임시 저장한 글을 대충 편집해서 제출할 수 있지만 그러긴 싫었다. 미루면 미룰수록 고통은 더 커진다는 걸 알기에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았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열고 무작정 새 글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현재 내 심정을 그대로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타이핑을 시작하니 의외로 글이 써지는 것이 아닌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바엔 무작정 아무거나 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글이 안 써지면 글이 안 써진다 솔직하게 내려놓고 시작하니 글이 써지는 신기한 경험을 한 셈이다. 쓰다 보니 오늘 아침 학인이 글 쓸 주제를 던져 준 게 생각났다. 카카오톡을 열어 주제를 확인했다. 주제는 ‘재독 하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깊은 독서를 위한 필수적인 훈련이 바로 관찰이고, 관찰을 통한 쓰기다.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물에 대한 표현력이 풍부해지는데, 이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다각적인 안목이 생겼기 때문이다. 읽기와 쓰기는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깊이 읽기, 재독의 핵심은 '관찰'이다.
(10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책 읽기 기술 92쪽)
이정훈 작가는 <<10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책 읽기 기술>>에서 재독의 핵심은 ‘관찰’이라고 했다. 재독 한 책을 다시 펴고 관찰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은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이었다. 책 펴자 여기저기 낙서가 보였다. 형광펜과 연필, 볼펜으로 밑줄 그었던 문장들도 눈에 들어왔다. 순간 기억이 소환됐다. 글쓰기 욕망에 불을 짚여주던 책이 <<쓰기의 말들>>이었다. 책을 읽고 너무 좋아 5권 정도 사서 주변에 나눠주기도 했다. 2019년엔 은유 작가의 팬 사인회도 다녀왔다. 책 앞표지에 그때 받은 사인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재독 하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흔적’이다. 재독은 ‘흔적’을 다시 ‘관찰’하게 하고 ‘예전의 나’를 소환했다. 책 속 낙서를 보며 ‘아~ 이땐 이랬었지.’ 당시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찾아왔다. 또 지금의 나도 다시 보였다. 그간 글 쓰며 고군분투했던, 흔들려도 꿋꿋하게 써나갔던 날들도 스쳤다. 재독이 주는 선물이었다. 흐뭇했고 잠시 설레었고 뿌듯했다. 2022년은 재독의 해로, 또 다른 흔적을 남기는 해로 만들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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