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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쓰지 않은 채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by 오류정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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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쓰지 않은 채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생각이란 순전히 내적 과정이며, 펜의 유일한 기능은 완성된 생각을 종이에 적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체계적으로 생각하려면 반드시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카너먼 교수는 “우리 뇌는 결론으로 곧장 건너뛰는 기계”와 같다고 이야기했다. 사실과 합리성 차원에서 보면 결론으로 건너뛰도록 고안된 기계에는 좀처럼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 뇌가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이라는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친다. 그래서 최소한 그 뇌라는 기계의 균형이라도 잡아주기 위해 글쓰기가 필요하다.

한 일화를 살펴보자. 어느 날 리처드 파인만의 연구실에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한 역사학자가 방문했다. 연구실에서 파인만의 공책을 발견한 그는 “파인만의 생각이 기록된 멋진 기록물”을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파인만이 이의를 제기했다.

“아뇨, 아닙니다! 그 공책은 제가 생각한 과정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바로 제 생각의 과정입니다. 실제로 저는 종이 위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글쎄요,” 그 역사학자가 말했다. “작업은 교수님 머릿속에서 이루어졌고, 그 기록이 여기 남아 있는 거잖아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그건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일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종이에 적으면서 일해야 하는데, 이게 바로 그 종이입니다.”

이것은 파인만에게는 매우 중요한 차이였다. 단지 언어적 차이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도 그럴 만했다. 생각의 영역에서 모든 것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차이였기 때문이다. 어떤 주장이건 글로 표현되어야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들여다볼 수 있으며, 이런 거리가 유지되어야 그 주장에 대해 이모저모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주장을 면밀하게 살피려면 정신적 자원이 필요한데, 만약 그 주장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 그 주장 자체가 바로 이 정신적 자원을 독차지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글로 쓰지 않은 채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실이 그래도 사람들은 늘 반대로 한다. 생각하려면 써야 하고 쓰면 체계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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