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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자라게 하는 좋은 말

by 오류정 202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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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끈기가 없어. 사우나를 데리고 가도 니는 1분도 못 견디고 나가뿔자나."

아침 식탁에서 뜬금없이 이런 얘기가 나왔다. 왜 갑자기 화제가 나로 바뀌었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줄곧 부모님께 자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옆집의 아이, 위층의 형 심지어 동생과 비교는 자주 당했다. 고개를 숙이고 허겁지겁 밥을 먹고 집을 뛰쳐나왔다.

자라는 말, 칭찬. 나도 듣고 싶었다. 옆집 아이가, 윗집 형이 마냥 부러웠다. 나도 그리 되고 싶었다. 그래서 노력했다.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노력, 인정받으려는 노력. 그렇게 노력하며 살았다. 그런데 잘 안됐다. 노력은 계속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노력하면 언젠가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목표였다. 목표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노력만 했더니 이룬 게 아무것도 없었다.   

목표를 세우지 못했다. 세운 적은 많았지만 이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워도 이루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계획표를 짜도 지키지 않으니 계획표도 만들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속으론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내가 한 번 제대로 하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가끔씩 했다.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마음이었다. 정말로 변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나는 정말 간절했다. 

이런 나를 깨우쳐 주려고 나타난 게 있었다. 바로 책이다. 뭔가에 끌리듯 우연히 내 삶에 훅하고 책이 들어왔다.

말은 자란다. 어릴 적의 나는 ‘자라게 하는 말’을 많이 듣지 못했다. 하지만 듣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면의 상처 많은 어린아이를 숨겨두고 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더디기는 했지만 조금씩 성장했고,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돌아볼 만큼 넓어졌다. 이제는 끊임없이 생겨나는 삶의 과제들이 말 그릇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담금질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성실하게, 사소한 책임을 다하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시간들 틈에서 내 말 그릇이 또 조금씩 자라날 것임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릇, P311)

"석헌아, 엄마 절에 좀 데려다 도."

토요일 오전 엄마를 절에 모셔다 주는 데 '현상이는 00 했다더라.'며 말을 꺼내신다. 유튜브에서 이민호 작가가 세바시에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약간 쑥스럽고 민망했지만 용기 내서 떨리는 목소리로 얘길 꺼냈다.

"엄마, 엄마 건물주예요. 아직 완성은 덜 됐지만. 그러니 부러워하지 마세요."

엄마의 눈이 순간 확 커졌다. 줄었다. 말없이 절에 도착했다. 엄마에게 해줄 따뜻한 말, 아빠에게 해줄 응원의 말을 준비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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