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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관리자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

by 오류정 2021.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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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톡 드려 죄송합니다.' 
12시 1분에 입력한 구글 설문지 캡처 화면. 
'공지 사항 정확히 숙지 못하여, 날짜 카운팅 때문에 문의드립니다. 구글 설문지 날짜 초과되어 해당 부분 카운팅 안 되는 구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쭤봅니다 ㅠㅠ. 좋은 밤 보내세요.'

카톡 메시지가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 1분이다. 메모 독서 습관 온라인 반에 새로 참여한 회원이 보낸 것이다. 카톡을 확인한 건 새벽 5시 30분이었다. 카톡을 확인하자마자 혹시 구글 설문지에 무슨 문제가 있진 않았나부터 살폈다. 다행히 다른 회원들은 모두 인증을 무사히 마친 상태였다. 2년째 메모 독서 습관 온라인 반 운영을 도우며 많은 일들을 겪었다. 2년간 약 1,000명의 사람들을 온라인으로 만났다. 다양한 사건 사고만큼 감동적인 일도 많았다.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는 사람, 하루 빠졌다고 그 뒤로 인증을 아예 안 하는 사람, 시도 때도 없이 카톡으로 질문하는 사람, 메모 독서로 새 삶을 얻었다는 사람, 취업했다는 사람까지. 메모 독서 습관반 운영을 도운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희로애락을 겪었다.

사실 이번 경우는 그간 사례로 놓고 보면 별 거 아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아침부터 울컥 화가 치밀었다. 바로 답장하려다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창문을 열어 새벽 공기를 들이마신다. 6월 중순에 접어들지만 새벽은 여전히 쌀쌀하다. 갑자기 재채기가 나왔다. 연거푸 5번 정도. 창문을 닫고 크게 심호흡을 해본다. '새벽에 카톡을 보낸 이유가 뭘까? 시작 날 공지 사항을 개별적으로 보내줬는데 이틀이 지난 후에 공지 사항을 정확히 숙지 못했다고 하는 건 뭘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 울컥 화가 나는 건 왜 일까?' 천천히 생각을 시작했다. 

먼저 내가 울컥하는 이유는 새벽 시간에 방해를 받아서였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 시간에 방해를 받아서였다. 모닝커피 한 잔 마시며 기분 좋게 책을 읽어야 할 시간에 간밤에 카톡 알람 메시지를 읽은 덕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감정이 앞서니 책은 눈에 들어올 리 없었고 머릿속에서는 이유를 찾느라 뇌가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결론은 모임 관리자니 감내하자다. 그냥 넘기기로 한다. 

다음으로 회원의 입장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다양한 스케줄을 소화한 토요일 밤 11시경.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었다가 '맞다, 메모 독서 인증해야지.' 하면서 겨우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는다. 무슨 책을 읽어야지 책장을 두리번거리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을 꺼내 든다. 책을 펴서 읽는 데 예상외로 책이 재미가 없다. 하지만 메모 독서를 인증해야 하니 억지로 억지로 읽고 문장을 추려낸다. 종이 노트에 쓰려고 글씨를 쓰는데 글씨도 엉망이고 잘 안 써진다. 그래서 아이패드를 꺼내 굿 노트에 필기를 시작한다. 몸이 피곤한 탓에 글씨는 계속 마음이 안 들지만 썼다 지웠다를 3~4번 반복하니 그나마 괜찮은 노트 메모가 완성됐다. '그래, 이 정도면 남한테 보여도 괜찮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제 인증해야지 하고 단체 카톡방을 열었더니 벌써 사람들은 인증을 다 마친 듯 보였고 내가 꼴찌로 인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구글 설문지 링크를 클릭하고 인증 버튼을 눌렀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시간이 12시를 넘겼고 딱 1분이 넘어 버린 걸 발견한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손이 떨리고 심장이 요동친다. 첫 인증인데, 10분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 1시간이나 해버렸고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이렇게 됐단 결론에 이른다. 혹시 이거 수정되지 않을까 해서 구글 스프레드 시트 여기저기를 눌러봤는데, 구글 설문지 기능이 보기에만 한정되어 있단 걸 발견한다. 아뿔싸! 어쩔 수 없는 건가? 아니다, 모임 관리자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불현듯 생각이 들어 카톡을 보낸다. 아무 생각 없이. 카톡을 보냈는 데 모임 관리자가 읽질 않는다. 왜 빨리 안 읽는 거야. 읽으라고. 여전히 관리자에겐 답변이 없다. 10분쯤 뒤, 카톡 보낸 걸 후회한다. 보내지 말 것. 혼자 괴로워한다. 혼자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자포자기하고 침대에 눕는다.

나의 상상이다. 어쩌면 이럴 수도 있으니 이해해야겠지 생각한다. 울컥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내 감정을 먼저 보살필 수 있게 된 것,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글로 쓰면 치유 효과가 배다 된다는 것, 쓰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단 것, 이 모든 걸 알려준 책에게 감사한 아침이다. 처음엔 욱하는 감정을 다스리려 글을 썼고 다 적고 나니 카톡을 보낸 회원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예전의 나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오전 10시쯤 칭찬과 격려 메시지를 써서 보내려고 한다. 시간이 초과돼서 다음 날 인증한 걸 되돌릴 수 없단 사실을 알면 실망부터 할 거란 걸 안다. 그래도 속상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감정이 전달되도록 메시지를 쓸 예정이다. 알아주면 고맙고 아니면 마는 거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완벽을 향한 여정은 우리를 지치고 힘겹게 만든다. 우리는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이 되려고 너무나 많은 힘과 시간을 낭비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너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돼’, ‘이래서야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왜 우리는 진짜 나 자신이 아닌, 타인 혹은 세상이 만들어낸 ‘완벽한 모습’을 향해가려고 발버둥 칠까? 진실하고 꾸밈없는 사람에게, 자기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자기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에게 더 끌리면서도 우리는 왜 마음 편히 그렇게 되지 못할까? ‘불완전함’은 ‘부적합함’이 아니다. 그 누구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강요할 수 없다. 12년에 걸쳐 수천 명을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저자 브라운 박사는 이러한 ‘내 안의 마음 감옥’의 정체가 수치심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빨라지고 숨고 싶고 달아나고 싶고 화나게 하고 심지어 파괴적인 행동으로 나를 끌고 가는 이 감정의 정체를 저자는 하나하나 파헤쳐가다. 이 마음의 여정에 동행하면서, 우리는 ‘나를 괴롭혀온 그 오랜 해묵은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운다.
(나는 왜 내편이 아닌가,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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