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쓰기 말하기를 잘 못한다. 그런데 반대로 상대방이 쓴 글이나 말을 이해 못 할 때가 종종 있다. 일을 할 때 상대방이 한 말이 잘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은 이해하는데... ㅜㅜ
책 꾸준히 읽으면 도움이 될까?? 다른 사람 말을 이해하는데 ㅜㅜ
스스로 아니 왜 이 사람이 한 말이 이해가 안 가지? 자책하게 되네.
하루 두쪽 책 읽기 방에 '행복 나누미'란 친구가 올린 고민이다. 한 때 나 또한 스스로 자책해 본 경험이 있기에 도움을 주고자 내 경험과 생각, 문장을 나눴다.
먼저, 자신이 무엇을 잘 못한다고 인지한 건 대단히 좋은 발견이다. 대부분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 못하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런 면에서 행복 나누미는 성실한 친구인 듯하다. 성실한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자주 하는 걸 많이 봤다. 물론 거기에 나도 포함된다.
다음은, 글쓰기 말하기를 잘 못하는 건, 많이 해보지 않아서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우리는 밥 먹는 데 선수들이다. 왜 그럴까? 밥을 그만큼 많이 먹어봤기 때문이다. 한데 글쓰기와 말하기는 밥 먹기에 비해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서툰 것이다. 그러니 잘 못하는 건 당연하다. 다른 사람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쌍방 과실이다. 이해가 안 되도록 말한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이해가 안 되도록 말을 하니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주로 이럴 때 쓰는 말이 '말 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말일테다. 알아듣도록 처음부터 말을 했으면 얼마나 좋으려나. 또한 여기에 말을 하는 사람의 오류가 존재한다. <<프레임>>이란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자기라는 프레임에 갇힌 우리는 우리의 의사 전달이 항상 정확하고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전달할 말과 메모,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은 우리 자신의 프레임 속에서만 자명할 뿐 다른 사람의 프레임에서 보자면 애매하기 일쑤다. 이러한 의사불통으로 인해 생겨나는 오해와 갈등에 대해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의 무감각과 무능력 배려 없음을 탓한다.
(프레임, P120)
<<프레임>>에서 지적한 대로 의사불통은 양방책임이다. 아무리 내가 공을 들여서 내용을 전달한다고 한들, 상대방이 백 퍼센트 이해하리란 보장이 없다. 각자 생각하는 바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말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사람인 것이다.
그럼 해결 방법은 없을까? 있다. 들은 내용을 서로 말로 확인해 보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이 질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내용에 대해서 들은 뒤에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여태까지 들은 내용을 저는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는 건가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 좀 해주세요."
처음에는 어색할 것이다. 그리고 창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자기의 프레임에 갇힌 생각이다. 오히려 상대방은 질문이 많은 사람을 좋아할지 모른다. 그만큼 실수가 줄어들지 때문이다. 물어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한국은 군대 문화의 영향인지, 아니면 유교 문화의 잘못된 잔재인지 모르지만 묻는 걸 불편하게 생각한다. 심지어 언어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기자들조차 잘 질문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기자회견 때 연설이 끝나고 질문을 받겠다고 했지만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손을 들어 질문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중국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기자들 뿐일까? 우리는 일을 할 때도 상사에게 잘 묻지 않는다. 척하면 척, 하고 알아들어야 실력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윗사람에게 질문하는 행동이 토를 달거나 반항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서인지 잘 모르겠다. 나도 일 할 때 그랬다. 물어보지 않고 혼자서 척척 해냈다. 그리고 상사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과 맞지 않은 결과가 나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질문하세요. 정말로요. 괜찮습니다. 화내지 않아요.
오히려 질문하는 사람을 보면 상사 입장에서는 안심이 됩니다.
자기가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가는 사람이니까요.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198p)
그렇다. 질문이 많은 사람을 상사는 좋아한다. 거래처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메일을 보낼 때 우리는 마지막에 이렇게 보내지 않던가? 혹시 궁금하신 점이나 질문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그런데 진짜 질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렇게 메일을 쓰고 한국에서 질문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외국 사람들과 일할 때는 사뭇 다르다. 외국 사람들은 짧지만 단답형 메일을 자주 쓴다. 주로 쓰는 표현 중 이런 것이 있다. 'We are on the same page?' 우리 같은 페이지에 있는 거 맞죠라고 묻는 것이다. 서로가 이해한 게 똑같냐며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모르는 것을 알 때까지 묻는 것, 그것이 질문의 정수요, 가장 좋은 질문이다.
(타이탄의 도구들, 186p)
책을 읽으면 이해력이 올라갈까란 질문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이해력은 경험치가 관건이다. 다양한 경험을 해볼수록 다양한 관점이 생기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 책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맞다. 그런 면에서 책을 읽으면 이해력이 올라가는 게 맞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읽기만 하고 '사유'하지 않는다면 그건 읽으나 마나 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말을 이해하는 건 어렵다. 처음 배우긴 쉬울지 모르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운 언어가 바로 한국어다. 뜻이 함축적이며 말속에 뼈가 있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숨은 의도가 깔려있는 경우들도 많다. 특히 일에서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한다. 그러니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한국어를 45년 써본 나도 여전히 어렵다 생각한다. 대신 어려운 만큼 예민하며 아름다운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자책은 대표적인 시간 낭비다. 머릿속의 에고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자책은 삶에서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왜 잘못이 일방적으로 나에게 있다고만 생각하는 것일까? 이해하게 설명하지 못한 상대방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또한 자책하며 보낸 시간을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자책도 일종의 습관이다. 자책한다고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그러니 자책하며 허송 시간을 보낼 바엔 문제를 해결하는 질문에 시간을 써야 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행복 나누미'란 친구는 성실한 친구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친구다. 고민이 생겼을 때 질문하는 용감한 친구다. 그러니 자책할 필요 없다. 앞으로는 자책 대신 질문하는 습관을 만들면 좋겠다.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하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다. 혼자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단 질문을 통해 서로 간의 생각의 간극을 좁혀나가다 보면 일도 더 잘하게 되고 일잘러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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