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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 쓸수록 변하는 귀

by 오류정 2022.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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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하고 지내냐?"
"저 요즘 글 쓰고 있어요."
"글, 사진은 계속하지? 언제 술 한잔 하자."
"네, 형님. 시간 나실 때 연락 주세요."

제육볶음 정식이 내 앞에 도착했을 때 휴대전화가 테이블 위에서 요동쳤다. 전화기엔 한동안 잊고 지낸 사람의 이름이 떠있었다. 근사한 한 끼의 즐거움을 전화 통화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혼자 몸을 흔드는 전화기가 애처롭게 나를 올려다봤다. 어서 빨리 전화를 받으라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보이기도 했다. 전화기를 들었다 내렸다 수저를 들었다 내렸다. 만약 지금 전화를 받으면 4년 만에 통화가 성사되는 것이다.   

한 때 매일 통화했던 사람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살짝 취한 것 같았다. 수화기 너머 풍경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짧은 안부를 묻는 가벼운 전화는 1분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누군가 함께 낮술을 기울이다 혹은 갑자기 옛일을 떠올랐거나 그도 아니면 실수로 통화 버튼을 눌렀거나 이유가 궁금해졌다.  

통화가 이어지지 않은 건 내 마음도 동하지 않아서였다. 언제 술 한잔 하자는 빈말을 싫어한다. 정말 할 말이 딱히 없을 때 하는 말같이 느껴져서다. 뭔가 딱 자르기도 뭐하고 어떻게든 느슨한 인연을 가져가고 싶을 때 하는 말 같다. 그리고 그 '언제'는 영원히 날을 잡지 못한다. 만약 진짜 만나고 싶었다면 '네'라는 짧은 인사 대신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내일 괜찮으세요? 아니면 다음 주 수요일 저녁 7시는 어떠세요?" 

오랫동안 친했던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의 진심보다 나를 대했던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태도는 진심을 읽어 내는 가장 중요한 거울이다. 쓰기는 귀를 더욱 예민하게 하고 평소의 말들도 번역해서 들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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