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이 딸이 여행을 갔는데 책을 챙기진 않고 대신 여행 기간 동안 읽을 책 사진을 미리 찍어 갔다는 내용을 카톡에서 확인했습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읽기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 데 이걸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쓰는 글입니다. 노트에 미리 끄적여 봤는데 대략 10단계로 얘기할 수 있겠네요.
가장 먼저 나타나는 1단계 변화는 책가방에 책 넣기입니다. 책을 책상에 앉아서만 읽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날, 아침 책을 읽다가 출근 시간이 다가옵니다. 자연스럽게 읽던 책을 챙겨서 나옵니다. 의식적으로 가방에 넣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가방에 책을 넣은 것입니다. 책을 챙겨 출근을 한 뒤, 가방을 열어보고 ‘어라, 책이 여기 왜 들어있지?’하며 내심 뿌듯해합니다. 이게 첫 번째 변화였습니다.
2단계 변화는 지하철에서 책 읽기입니다. 책을 가방에 넣긴 했는데, 지하철에선 도통 책이 안 펴지더라고요.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였습니다. 출근 시간 만원 지하철은 움직일 공간도 턱없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책 읽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틈을 타서 그 사람 뒤쪽으로 이동한 뒤 무슨 책을 읽고 있나 뒤에서 까치발을 들고 힐끔 봤습니다. 옆에서 봤는데 상당히 멋져 보이더군요. 어떤 책을 읽고 있나 궁금해졌습니다. 다시 뒤쪽으로 슬금슬금 이동해 책 내용을 스윽 봤습니다. 그러다 조금 따라 읽게 됩니다. ‘아니, 이럴 수가!’ 나랑 같은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서서 책 읽는 게 가능하구나 생각했습니다. 퇴근길에 도전해봐야겠다 생각합니다. 다행히 퇴근길에는 출근할 때보다 사람들이 비교적 적습니다. 그래서 지하철 연결 통로에 기대어 책을 꺼내 읽어봤습니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지하철의 움직임을 따라 제 눈도 책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렇게 서서히 책에 빠져듭니다. 이게 두 번째 변화였습니다. 두꺼운 책, 그러니까 400페이지 분량을 넘어가는 책은 무거워서 서서 읽기가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이용했던 방법은 책 사진을 찍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책 사진을 10장 정도 찍어서 출퇴근 길에 읽곤 했습니다. 주영이 딸이 지금 딱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3단계 변화는 커피숍에서 책 읽기입니다. 커피숍에 남자 혼자 앉아서 책 읽는 거 본 적 있으신가요? 전 몇 번 봤는데 세상 불쌍해 보였습니다. 삼삼 오오 모여서 수다를 떠는 커피숍에서 혼자서 책 읽는 모습을 보면 왕따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일부러 커피숍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앉아 있다 오곤 합니다. 책도 읽고 사람 구경도 하면서요. 어떤 커피숍은 집중이 잘되고 어떤 커피숍은 집중이 잘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커피숍을 돌아다니다 저에게 딱 맞는 곳을 두 곳 정도 찾았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흐리고 채광이 잘 들어오는 커피숍이 저에게 잘 맞더라고요. 탁 트이고 넓은 공간의 커피숍도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스타벅스 광화문점, 종로점이 그랬습니다. 대신 넓은 공간엔 그만큼 사람들이 많기 마련입니다. 해서 넓은 공간 커피숍에 갈 땐 3M 이어 플러그를 챙겨갑니다. 3M 이어 플러그를 귀에 꽂으면 어느 순간 주변 소음이 화이트 소음으로 바뀝니다. 커피숍을 나만의 책 읽기 공간으로 바꾸는 방법이 바로 이어 플로그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어 플러그를 귀에 꽂는 순간 5초 만에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경험. 저는 3M 이어 플러그 두 개를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고, 집에서도 가끔 이용합니다.
4단계 변화는 독서대 구입하기입니다. 책을 손에 들고 읽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어깨도 조금씩 아프고 팔목도 아프기 시작합니다. 순간 독서대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휴대용 독서대, 다음으로 공부용 이단 독서대 구입했고 지금은 눈높이 조절 독서대를 사용 중입니다. 이렇게 모으다 보니 벌써 독서대만 5개가 되었습니다.
5단계 변화는 문구 구입하기입니다. 책에 밑줄 긋기 위한 형광펜, 독서 노트, 볼펜 등을 구입하게 됩니다. 독서 노트는 처음에 집에 굴러다니는 아무 노트에 쓰기 시작했는데 한 권 한 권 늘어나면서 점점 고급 노트로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신사의 노트를 쓰고 있습니다. 형광펜은 샤피 형광펜 3색(주황, 노랑, 초록)을 사용하고 볼펜은 제트스트림 4in1을 3년째 쓰고 있습니다.
6단계 변화는 옮겨 쓰기입니다. 책에서 발견한 명문장을 독서 노트에 두 줄 옮겨 적는 것으로 시작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린 뒤엔 한 단락을, 또 시간이 흐른 뒤엔 한 챕터를, 마지막은 책 한 권 전체를 필사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필사한 책은 <니체의 말 1>이 유일하고 80퍼센트 이상 필사한 책은 3권 정도 됩니다. 종이 노트에 옮겨 적기 다음은 종이 노트와 디지털 에버 노트에 동시에 옮겨 적는 과정으로 발전합니다. 지금은 종이 노트, 디지털 에버노트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인스타그램용 메모도 겸해서 하고 있습니다.
7단계 변화는 블로그에 글쓰기입니다.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이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옵니다. 시작은 단 몇 줄의 리뷰였습니다. 다음은 좋은 문장 사진을 올리고 그 문장에 대한 내 생각을 쓰기였습니다. 짧지만 이렇게 한 편 두 편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글이 1,200편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만의 글쓰기 연습을 블로그에서 한 것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합격했는데요,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따로 쓰지 않고 그간 올렸던 글 중에서 반응이 좋았던 글을 선별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대신 포스팅 전에 3번 정도 퇴고도 하고 있습니다.
8단계 변화는 리뷰하기입니다. 어느 순간 내가 얼마나 읽었지 하면서 리뷰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독서 정산을 해봤습니다. 독서 일지에 한 달 동안 읽은 책 제목과 평점 등을 기록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달을 정산하다 보면 일 년 치를 한 번에 리뷰할 수 있게 됩니다. 일 년 치가 정리되면 일 년 동안 이만큼 성장했다는 뿌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고 내년에 더 분발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기게 됩니다. 리뷰는 책에 국한된 것만은 아닙니다. 영화를 볼 때도, 유튜브를 시청한 뒤에도 리뷰하게 됩니다. 리뷰가 어느 순간 자동으로 가능해집니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자동으로 체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9단계 변화는 책 구입 비용 증가입니다. 1단계부터 8단계까진 책 살 때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손해를 안 보려고 책 구입하기 전에 서문과 목차를 꼼꼼하게 읽고 구입했습니다. 책 좀 읽다 보면 비용에 대한 부분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비용을 줄이려고 한 달에 2권은 중고 서점에서 구입하고 2권을 새 책으로 사기도 했습니다. 중고 서점에서는 책을 싸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 상태가 어떤지는 알기 힘듭니다. 최상이라고 적혀있는 책인데 흠집이 있는 경우도 생기고요. 그래서 직접 찾아가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합니다. 이런 경험을 주기적으로 하다 보면 결국엔 책은 모두 새 책으로 구입하게 됩니다. 가끔 절판된 책을 웃돈을 주고 구입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종국엔 밥 값을 줄여가며 책을 사게 됩니다. 지금 제가 딱 그렇습니다. 밥 값보다 책 값을 더 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170권을 샀고, 올해는 벌써 200권이나 샀네요. 김정운 교수처럼 2만 권으로 책방을 꾸밀 때까지 계속 살 생각입니다.
마지막 변화는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을 읽고 쓰며 보냅니다. 처음엔 독서 습관을 만드려고 억지로 10분씩 아침에 읽었습니다. 6개월 정도 뒤 습관이 자리 잡은 뒤에는 아침에 10분, 출근 지하철에서 10분, 퇴근 지하철에서 10분, 집에 와서 10분으로 틈틈이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지금은 따로 시간을 정하지 않고 수시로 읽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나서, 아침밥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청소하다가, 외출하고 돌아와서, 한 마디로 시도 때도 없이 하게 됩니다. 시간으로 환산해보진 않았는데, 대략적으로 하루에 4시간 정도 될 것 같네요. 현재는 책 읽고 메모하고 글 쓰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합니다. 본업보다 이 3가지에 시간을 더 쓰고 있습니다.
쓰다 보니 엄청 길어졌네요. 각 단계별로 할 이야기도 많은데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어요. 글 쓰는 시간이 점점 시간이 길어지네요. 이것도 변화겠네요. 요즘은 두 시간 걸리는 것 같아요. 글 쓰다가 등이 아파서 잠깐씩 쉬고 다시 쓰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 체력을 길러야 할 단계가 된 것 같아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더 유익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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