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스웨덴 왕립공과대학 대학원 석사,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교 생명공학 박사, 2007년 스위스 화학회 '폴리머 사이언스 부문' 최우수 논문 발표상 수상. 언론을 통해 알려진 루시드 폴의 이력입니다. 그가 논문을 통해 발표한 '일산화질소 전달체용 미셀 Micelles for Delivery of Nitric Oxide'이라는 의료용 물질은 미국 약품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솔직히 일산화질소 전달체용 미셀이라는 것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최우수 논문 상을 수상하고 특허로 인정될 정도니 그쪽 방면에서 잘 나갔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그가 돌연 귀국해서 전공과는 무관한 음악활동에 전념합니다. 1993년부터 2008년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15년에 걸쳐 공학도로 쌓아 올린 모든 것을 한꺼번에 포기하고 말이죠. 왜 루시드 폴은 공학자 대신 음악가를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어느 인터뷰에서 루시드폴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위스에서 박사 논문이 통과되고 일주일 동안 휴가를 냈습니다. 그리고 친구 집에서 쉬었는데요. 그때 제가 그 친구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놀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즐겨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열심히 해야 된다. 바쁘게 살아야 된다는 교육은 받았는데 어떻게 잘 놀아야 하는지를 아무도 얘기해 준 적이 없더군요. 노는 방법도 모르겠고, 논다는 것이 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술 마시고 그냥 퍼져 있는 것이 노는 건가? 여행을 가는 것이 노는 건가? 뭔지 모르겠더군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동안 시간을 다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루시드 폴을 스위스에서 '워커홀릭 workaholic'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거의 빠짐없이 실험실에 나와서 일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스위스에서 지낼 적에 이란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주말마다 루시드 폴을 불러내서 함께 놀려고 애를 썼는데 알고 보니 일만 하다가 루시드 폴이 미칠까 봐 걱정이 돼서 그랬답니다. 도대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저도 한때 루시드 폴처럼 살았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 저 또한 워커홀릭의 삶에 빠져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승진하는 것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거래처들을 쥐 잡듯이 점검하면서 못살게 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는 내 일이 최우선에 배치될 수 있도록 하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유일한 휴식이라면 일요일에 낮술이 전부였습니다. 루시드 폴의 인터뷰에서 시간을 다 잃어버렸다는 대목이 그래서 저에게 더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야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지금 당장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해도 견뎌냈습니다. 나중을 생각하면서요. 언젠가를 기다리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심장이 조여 오고 몸이 슬슬 아프기 시작하니 그제야 현실의 내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무엇을 위해 하루에 4~5시간만 자고 오전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며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친 지난 세월이요.
병가를 내고 회사로 돌아오니 '나 아니면 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부여한 강박이었단 것을요.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사는 삶이 전부가 아님을요. 남들보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것을요. 그동안 일에만 동창회도 안 나가고 주변에 소홀했던 내 삶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사를 선택했습니다. 결론이 명확해서였다고 할까요. 일단 살사는 일이 아니라 놀이기 때문에 확실히 재밌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제 선택이 맞았다는 걸 확신합니다. 일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요 그 에너지라는 것이 쓰면 쓸수록 줄어듭니다. 사람의 몸은 배터리와 같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금방 완충이 되지만 쓰면 쓸수록 완충되는 비율이 점점 줄어들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10분만 쓰면 방전되는 배터리처럼 되는 것이죠.
일하려면 반대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에너지가 풀로 충전될 수 있어요. 그런데 고작 휴식이란 것이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지는 않나요? 술을 마시면 그 순간엔 피로가 풀리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실제로는 더 몸을 힘들게 해서 피로가 더 쌓이게 만듭니다. 여행도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떠나는 순간까지는 설레고 에너지를 얻을지 모르지만 여행에서 돌아오기 하루 전날을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 싫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살사는 다릅니다. 살사는 여행처럼 먼 곳으로 떠날 필요도 없고 술처럼 몸을 혹사할 필요도 없습니다. 퇴근 후 30분에서 1시간 이면 충분하니 일하는 데도 무리가 없고 땀 흘리며 운동도 되니 건강에도 좋습니다. 또한 방전된 에너지를 순식간에 풀로 채울 수 있는 멋진 취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좋은 걸 지금에서야 알아서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혹시 워커홀릭이신가요? 쉬어도 쉬는 게 아닌 거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셨나요? 여태 재미난 것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셨나요? 그렇다면 여러분들께 강력하게 살사를 권합니다. 춤이야 말로 제가 만나본 제가 즐겨본 것 중에 단연코 최고라고 자부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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