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여행에서 이틀 동안 아팠다. 무엇을 잘 못 먹었는지, 평소보다 무리해서인지, 너무 더워서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게 복합적이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먹은 것들이 전부 화장실로 직행했다는 사실뿐이다. 10분에 1번, 15분에 1번, 길어야 30분에 1번 꼴로 화장실에 들낙거렸다. 들어가서 물처럼 변을 쏟아냈다.
화장실 입장 횟수가 증가할수록 몸의 기운은 떨어졌다. 4박 5일 여행 중 꽃이었던 풀빌라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꼭 한 번은 가봐야지 작정하고 큰 맘먹고 결재한 숙소였는데,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이런 변이 있나. 여자친구는 옆에서 안쓰럽게 나를 쳐다봤다. 숙소가 외진 곳에 있어서 근처에 약국도, 병원도 없었다. 가려면 1시간을 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 1시간 차를 운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그냥 가만히 누워있는 걸 선택했다. 함께 놀아주지 못하는 미안함은 덤이었다.
난 가끔씩 이런 일을 겪었다. 적당히가 안 되는 그런 날, 아팠다. 일을 너무 과하게 해서 탈진하기도 했고, 너무 많이 먹어서 위가 화를 내기도 했고, 너무 무리하게 놀아서 몸이 아프기도 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처음엔 남 탓을 주로 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내 탓을 했다가 다시 남 탓을 했다가를 반복했다. 이제는 남 탓, 내 탓을 그만뒀고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에 고마움을 느낀다.
유병욱 작가는 <<없던 오늘>>에서 코로나 펜더믹을 거치면서 우리에겐 없던 능력이 하나 생겼다고 이야기한다. 이름하여 음미력이다. 음미력은 '지금, 이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구나'에서 시작한다. 엄마의 집밥이 특별해지는 건, 엄마를 벗어나면서 알게 되고, 매일 당연하게 먹던 음식이 소중해지는 건 부모에게서 독립한 뒤부터다. 음미력이 생기기 시작하면 '감사함'이 뒤 이어서 따라온다.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렇다. 무리해서 잡은 숙소에서 보낼 꿈같은 여행을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 상태. 여자친구가 옆에서 챙겨주는 별 것 아닌 것도 모두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열이 있는지 손을 이마에 데 주는 것, 보리차를 끓여주는 것,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봐주는 것, 하나같이 감사한 것들이다. 만약 몸이 멀쩡했다면 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만들어주기 위해 신께서 마련한 이벤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2023년 여름휴가, 잊지 못할 풀빌라에서 벌어진 변으로 이 순간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기억되겠지. 이런 기억이 하나 더 생긴 덕분에 욕심이 더 줄어드는 것 같다. 점점 더 '과욕' 대신 '적당히'란 단어가 나에게 맞는다는 걸 이번 휴가 때 절실히 몸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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