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방금 본문 디자인 최종 원고를 검토했는데, 제가 생각했던 방향으로 진행이 안 된 것 같아요."
오전 10시쯤 출판사 대표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과 직접 통화는 원고 투고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대표님이 직접 전화하실 정도의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걸까? 의심이 고개를 들며 전화를 받았다. 탈고, 교정 교열 3회, 본문 디자인 확인 작업을 3회 마치고 2주일이 지난 시점이었고 내심 표지 디자인을 기다리던 때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문제는 대표님의 의도가 반영이 덜 된 것이었다.
내 입장에선 당황스러웠다. 여태까지 수없이 왔다 갔다 했는데, 그때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가 최종 본문 디자인까지 와서야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니까. 과연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출판사 대표님이니까 세세한 내용까지 원고를 다 들여다보지 않으리란 건 알았지만 막상 이렇게 닥치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독자들이 본문 내용을 다 읽는다고 볼 수 없거든요. 그래서 핵심 요약으로 각 장별로 정리해줘야 할 것 같아요."
명분은 '독자' 카드였다. 결론은 추가 원고를 더 써야 한다는 것이고. 현재 원고에서 손을 놓은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말이다. 나로선 추가 요약 작업을 위해 원고를 또 한 번 (여태 10번쯤 읽었다) 읽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순차적으로 한 번에 끝냈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왜 또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대표님, 책은 언제쯤 출간 예상하고 계세요?"
"원고만 충분히 보강된다면야, 이번달에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갑자기 던진 내 질문에 대표님이 당황하신 듯했다. 오늘이 5월 29일이란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번달에 출간이 가능하다니. 이번달이라고 해봐야 고작 이틀이 전부다. 최근 다른 원고들로 정신이 없으신 듯(물론 나의 추측이지만) 목소리에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아니면 자신이 말하면서도 자기 말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무튼 결론은 추가 원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줄이고 줄이고 줄이라고 해서 줄였더니, 이제 와서 추가 원고라니. 그것도 원고에서 손을 놓은 지 한 달여만에 말이다. 좋게 생각하려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맞다. 속에선 투덜이 스머프가 불평을 쏟아내려는 걸 겨우 막으면서 추가 원고 작업을 오늘 아침에 끝냈다. 각 장의 요약본을 만들었고, 한눈에 알아보기 쉽도록 독자가 한 번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샘플 2개도 추가했다.
작업을 마치고 출판사 카톡 단체방에 한글 파일을 올렸다. 이젠 그만 좀 끝냈으면 하는 바람을 살짝 담아서. 추가 원고를 작업하면서 앞전에 떠오른 불평불만이 살짝 부끄러워졌다. 왜냐하면 요약본과 샘플이 추가되면서 전보다 더 근사해졌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제는 불평을 오늘은 만족감을 느끼는 이런 아이러니라니. 책을 출간한 저자들도 말은 안 했지만 이런 과정을 겪었겠거니 생각하니 출간 저자들에게 다시금 존경심이 들었다.
첫 책은 반드시 출판사를 거쳐서 내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출판사는 책을 판매하기 위해 또한 독자들에게 더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다. 전문가의 말이 모두 100퍼센트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번 추가 원고 작업을 통해 또 한 가지를 배웠다. 출판사의 의견을 따른다고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가끔은 독자의 입장이 아닌 저자의 입장도 고려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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