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 중개사 공부를 시작한 지 5일 차, 민법 수업 1교시만에 학원을 도망 나왔다. 커피를 마셔도 가출한 정신은 돌아오지 않아서였다. 지난 수요일 밤 오랜만에 광고 사진 찍는 홍작가님을 만나 3시간 수다와 음주 덕분에 얻은 결과다. 고등학교 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의 감시망을 몰래 피해 도망치듯 조용하고 은밀하게 학원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곧장 달려와 침대와 한몸이 돼서 눈을 감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벌써 저녁 6시가 다 됐다. 한결 나아진 정신으로 카톡을 확인했더니 밀린 카톡만 400개. 빠르게 내용을 훑어보고 하나씩 정리를 시작했다.
‘그만둘까. 왜 괜히 팔자에도 없는 공인 중개사 시험을 해보겠다고 도전한 건지.’ 머릿속에 도마뱀이 악마의 속삭임을 시작했다. ‘지금 환불하면 40만 원만 제외하고 돈을 돌려받을 수 있어.’ 한 번 나쁜 쪽으로 든 생각은 생각에 생각에 꼬리를 물로 계속 그만두는 쪽으로 나를 몰고 나갔다. 이대로 가만 놔둬선 정말로 그만둘 것 같아 무작정 밖으로 나와 찬 바람을 잠시 쏘인다. 머리가 다시 맑아지면서 ‘오늘 빼먹은 과정은 일요일에 동영상으로 복습하자.’한다.
책을 만나기 전에 난 자책을 밥먹듯 하던 사람이었다. ‘네가 하는 일이 뭐 언제나 그렇지, 어차피 해도 안될 것 뻔한데, 역시 나란 인간은 구제불능이야.’등 나 스스로 삶을 망치며 살고 있었다. 자책은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란 걸 책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내 삶은 한 발자국도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책 덕분에 자책을 그만둘 수 있었다. 요즘은 나에겐 좋은 말만 해주려고 노력하며 산다.
자책은 타인의 문제를 나에게서 원인을 찾을 때 생긴다.
나의 문제를 남에게 연결할 때 분노가 된다.
자기 문제로 지나치게 연결하는 습관은 예민함의 씨앗이 되며 자존감에도 치명적이다.
(자존감 수업, 226p)
금요일 오전 9시 20분, 따뜻한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학원으로 출근해 이 글을 쓰고 있다. 학원 1층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내가 너무 조급한 건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 조급함. 조급함을 내려놔야 되는데 자꾸 조급함이 나를 못살게 군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와 똑같은 조급함. 학원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만났을 때를 돌이켜보면서 알았다. 친해지는 게 먼저라는 걸. 책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잊고 있었다. 맞다. 책도, 운동도,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친해지는 게 먼저다. 익숙해지는 게 먼저다. 친해지려면 일단 자주 만나야 한다. 자주 만나야 점점 낯섦이 익숙함이 될 테니까.
1년 만에 합격하겠단 조급한 욕심을 버리고 매일 학원에 출근하는 걸로 목표를 재설정했다. ‘그래, 일단 학원에 출근만 하자.’ 출근이 익숙해지면 그다음 책을 펴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900페이지짜리 공인중개사법 책을 보면 한숨부터 나오지만 목표를 출근으로 낮추지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예전이면 벌써 환불하고 관뒀을 게 자명한데 책이 이리 나를 바꿔놓았다. 이제 사람이 되려나 보다.
내 인생은 내 책임이다.
(시작의 기술)
'오류 찾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중해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니다. (0) | 2021.03.15 |
---|---|
나도 나로 살기로 했다 (8) | 2021.03.14 |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찾았을 때 (2) | 2021.03.11 |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버티게 해 준 책속의 말들 (3) | 2021.03.10 |
책을 통해 배운 것들 (2) | 2021.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