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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 breaking은 초면에 서먹한 분위기를 풀자는 뜻이 아니다

by 오류정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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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Ice breaking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에,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사용하는 단어로 초면에 서먹한 분위기를 풀고 담당자들끼리 얼굴을 보자는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4년 전, 운 좋게 국제 홍보 영상 프로젝트를 하나 맡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과 학술 위원으로 구성된 8인의 인터뷰가 포함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 시작에 앞서 Ice breaking 시간이 있었다. 난 Ice breaking 프로젝트 시작 전에 간단하게 얼굴 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중간에서 담당 직원이 영어 통역을 해줄 테니 시간만 미리 빼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첫 미팅인데, 뭐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영어가 걱정인데 어찌해야 할까 물었더니 편하게 참석하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함께 미팅에 참여하기로 한 홍보 에이전시 대표에게 전활 걸어 같은 사정을 얘기했다. Ice breaking인데 뭐 특별한 게 있겠냐며 자신도 부담 없이 참석할 예정이라는 답을 들었다.

Ice breaking 회의는 밤 9시에 시작됐다. 홍대 어느 스터디 카페 4인 룸을 예약하고 미팅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운데는 노트북을, 오른편에는 아이패드를, 그리고 눈높이 조절대에 아이폰을 거치하고 미팅에 참석했다. 노트북에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1분 정도 소개 멘트를 구글 번역기를 통해 준비했고 아이패드에는 영한 번역을 위해 파파고를 준비했다. 그리고 아이폰에는 키노트로 스크립트를 저장해서 보고 있었다.

밤 9시, 홍보 에이전시 대표 1명, 담장자 2명, 해외 바이어 4명이 줌으로 만났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차례차례로 한 명씩 친절하게 소개해 주었고 호명된 사람들은 Hi와 안녕하세요를 섞어가며 말했다. 그렇게 간단한 소개가 끝이 났다. 그렇게 끝인 줄만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갑자기 예정에 일정 관련 질문을 받았다. 

홍보 회사 대표님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갑자기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프레젠테이션은 장작 20분 동안 이어졌다. '오 마이 갓' 난 소개 영어 1분만 준비했었는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다. 다음으로 내 차례다. 난 아까와 똑같이 1분 영어로 소개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I'm sorry I didn't prepare the schedule yet. (because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변명 같아서 거기까지만 덧붙여 말했다.)

다행히 중간에서 담당 직원이 나를 옹호해주었다. 오늘은 ice breaking 이니까 준비를 못한 것 같다고. 자신이 준비하라고 얘길 못했다고. 담당 직원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그리고 플랜은 다음 메일에 덧붙여서 보내겠다고. 그렇게 미팅이 끝났다. 미팅이 끝난 후 홍보 회사 대표님과의 전화 통화에서 난 충격적인 이야길 들었다.

"대표님, 어쩜 그렇게 준비를 잘해 오셨어요. 전 정말 ice breaking인 줄만 알고 아무 준비도 안 했는데요."
"마스터님, 준비는 안 깨지려면 해야 해요. 저희는 이틀 밤 꼬박 준비해서 자료를 만들었어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요."

밤 9시 뉴스를 보다가 그때 생각이 났다. 혹시 모를 상황 대비. 비즈니스의 세계에선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몸소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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