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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하면서 박사 꼭 해야할까?

by 오류정 2022. 8. 29.

"교수님이 너 시키라고 했는데, 나는 거짓말 못 치는데. 교수님에게 뭐라고 말하지."

박사 과정 중인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이 말을 자신에게 한 교수는 자신의 논문 심사 위원이라고 했다. 논문 심사 교수는 또 다른 지도 교수에게서 위 같은 말을 전해 듣고서 여과 없이 지인에게 전달했다. 지성인이라 불리는 교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을까?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일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지 듣고서 내 귀를 의심했다. 지인에게 시키라고 했던 지도 교수는 또 어떤가.

가스 라이팅이었다. 듣는 내내 머릿속에는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가스 라이팅은 데이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2022년 어느 대학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다.  
가스 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행위다.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이렇게 해서 타인을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것이다.

가스 라이팅은 <가스등(Gas Light)>이라는 연극에서 비롯된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이 연극에서 남편은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고는 부인이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를 탓한다. 이에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남편에게 의존하게 된다.

가스 라이팅은 누구 하나의 잘못이 아닌 가해자와 피해자의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데, 겪는 이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지고, 혼자서는 올바른 의사결정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며 가스 라이팅을 행하는 이에게 오히려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스 라이팅 피해를 당했다고 해도 이를 법적으로 처벌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 법은 당했다는 사람이 증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적, 심리적 지배를 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어렵다. 또한 비교적 최근에 생긴 개념이다 보니 처벌 근거나 요건도 미비하다.

이런 교수 밑에서 박사 과정 진행 중인 지인이 안쓰럽다. 알면서도 혼자 견뎌야 하니 걱정된다. 어디 가서 속 시원히 얘기라도 할 수 있으면 마음이나 후련할 텐데 혹여나 이런 얘기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혼자 분을 삮인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참는다. 교수의 비유를 맞춰야 논문이 통과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알아서 기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교수는 이 같은 사정을 교묘히 이용해 자기 일을 떠넘긴다. '너를 위해서야'라고 포장된 말의 실상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지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머릿속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박사를 해야 하나. 부디 지인이 역경을 잘 견디고 원하는 바를 쟁취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