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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를 볼 때마다 나에게 미안해진다.

by 오류정 2022. 2. 7.

화장실 변기를 볼 때마다 나에게 미안해진다. 그리고 매번 뒷일을 깨끗하게 받아주는 변기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변기는 매번 더러운 걸 받아주지만 하얗게 웃는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편하게 다 쏟아내’ 하는 것 같다. 매일 한 번, 가끔 두 번, 속이 불편할 땐 몇 번이고 뒷일을 받아주는 친구. 변기는 자신이 기꺼이 더럽혀지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또 항상 자리를 지켜준다. 더러울 때도 깨끗할 때도, 부끄러울 때도, 당당할 때도.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아한다. 요즘 무얼 먹는지, 무얼 먹고사는지 매번 확인시켜주는 친구가 변기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남동향으로 창문이 하나 있다. 창문이 하나라 냄새가 잘 빠지지 않는다. 해서 환기를 자주해야 한다. 냄새에 유독 민감한 나는 요리를 하거나 화장실을 다녀온 후 10분은 환기한다. 나를 위해서 변기를 위해서. 화장실 문도 항상 열어둔다. 오피스텔 안의 작은 방에서 답답해할지 모를 친구를 위해서 숨이라도 마음껏 쉬라고 말이다.

오늘은 변기를 3번 마주했다. 속 편히 사는데 왜 편치 않는 음식을 계속 먹냐고 변기가 물었다. 자책을 잠시 했고 변기에게 또 고마워했다.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다 변기에 묻은 오물 몇 곳을 닦았다. 변기를 닦는 일은 용모를 가꾸는 것만큼이나 내겐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곳에 머물 때까진 내 옆을 지켜줄 변기, 앞으로도 뒷 일을 잘 부탁한다.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살라며 웃는다. 하얗게.